16990325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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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3월 24일 己卯년 戊辰월 甲午일, 양력 1699-04-24 1699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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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3월 25일 갑오
二十五日 甲午
흐리다 맑음
陰陽
윤징귀(尹徵龜)인물가 아침 일찍 지나다 들러 하는 말이, “우리 가문에 가까이 지내는 친족이 적고 이(爾)자가 항렬자인데도 제각기 이름을 짓고 있으니 친족 간의 돈독하고 도타운 정의에 심히 어긋납니다. 이제 한천(寒泉) 문장인물, 분산(墳山)인물과 상의해서 고치려 합니다.”라고 했다. 내가 말하기를, “취지가 매우 좋소. 우리 가문의 도타운 가풍이 이로부터 더욱 떨치게 될 것이오.”라고 했다.
尹徵龜早過而言曰 吾門强近之族鮮少 而爾字行列 命名各殊 甚非敦厚之意 今欲與寒泉墳山相議改之云 余曰 意甚好矣 吾門厚風 將自此益振矣
윤시상(尹時相)인물이 왔다.
○尹時相來
출신(出身)개념 곽준의(郭浚儀)인물가 왔다.
出身郭浚儀來
류(柳) 대감인물흑산도공간에 있을 때 보낸 청력(靑曆)물품 및 시가 이제야 비로소 전전(轉轉)하여 전해 왔다. 시는 다음과 같다.

친구 소식 끊어질 듯 띄엄띄엄 오니
편지 한 장이 천금에 비할 바 아니오
흥에 겨운 산음(山陰)의 뱃길[1]처럼 하지는 못하더라도
중산대부(中散大夫)의 절교서(絶交書)[2]라도 보내시구려
풍상 겪으며 쇠한 몸뚱이 각자 잘 지키고
밥 잘 먹으며 떨어져 지내는 마음 서로 위로하다가
언젠가 화산(華山)을 반씩 나누어[3]
그대와 나 늘그막을 한 마을에서 보내리라

무인년(1698) 12월 하한(下澣) 정재(靜齋)인물



이 시는 앞에 보낸 시의 운(韻)을 다시 사용한 것이다.
○柳台在黑島時 所送靑曆及詩律 今始轉轉傳來 詩曰

故人消息未全疏
尺素千金較不如
縱阻山陰乘興棹
寧投中散絶交書
衰容各保風霜後
强飯相勞契闊餘
何日華山山一半
白頭吾與爾同閭

戊寅臘冬下澣靜齋云云



此乃更步前韻也
서유신(徐有信)인물이 왔다.
○徐有信來
늦벼물품를 파종했다.
○晩稻落種
함평(咸平)공간상인(喪人)개념 전여창(全汝昌)인물이 자기 일 때문에 왔다가 알현하면서 비자물품 1말, 생배[生梨]물품 5개, 전복물품 3접(串)을 바쳤다. 이 사람은 내가 재임할 때 신임하던 초관(哨官)개념이다.
○咸平喪人全汝昌以渠事來謁 持納榧子一斗生梨五介全卜三串 此乃吾在任時 爲哨官信任者也
용수초(龍鬚草)물품의 씨를 모판에 뿌렸다.
○龍鬚草注秧























주석[ ]

  1. 흥에 겨운 산음(山陰)의 뱃길: 동진(東晉)의 문인 왕휘지(王徽之)가 산음(현재의 절강성 소흥 지방)에 살고 있을 때 눈 오는 밤에 흥에 겨워 배를 타고 친구 대규(戴逵)를 찾아갔다가 문 앞에 이르렀을 때 흥이 다 했다며 만나지 않고 돌아온 고사를 말함. (《세설신어》 〈임탄(任誕)〉)
  2. 중산대부(中散大夫)의 절교서(絶交書): 중산대부는 죽림칠현 중 한 명인 혜강(嵇康)을 가리킴. 혜강이 자기에게 벼슬을 하라고 권유한 친구 산도(山濤)에게 보낸 〈절교서〉가 유명함.
  3. 화산(華山)을 반씩 나누어: 송(宋)의 장영(張詠)이 화산에 은거하던 진단(陳摶)을 흠모하여 화산의 반쪽을 나누어 그와 함께 머무르기를 원했다는 고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