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0219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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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2월 18일 丁丑년 癸卯월 庚子일, 양력 1697-03-11 1697년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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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2월 19일 경자
十九日 庚子
맑음
양(梁) <Term id="M545" name="좌수">좌수인물</Person>가 이른 아침에 와서 만났다. 그의 이름은 진기(鎭紀)라고 했다. 객실이 없어 머무르게 할 수 없었고 발병이 있어 즉시 보러 오지 못했다고 한참 얘기하고는 거친 반찬을 대략 마련하여 길손의 밥상을 보태주었다.
梁座首乘早來見 其名鎭紀云 盛言無客室不得奉留 有足疾不卽來見之由 略備粗饌以助客案
해가 뜨고 난 뒤 길을 떠나 절현치(切懸峙)공간를 넘었다. 마을 뒤쪽에 있는 험준한 고개다. 또 누리치(婁里峙)공간를 넘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지나온 길 중에 가장 험준한 곳으로 지리산공간 상봉이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여기서부터는 쌓인 눈이 녹지 않아 산이고 들이고 모두 하얗게 뒤덮여 여행길이 매우 어려웠다. 길가에 향교공간가 있었는데 바로 하동공간 땅이라고 했다. 정오가 지나 겨우 봉계역(鳳溪驛)공간에 도착해서 물품을 먹였다. 여기는 유숙했던 곳에서 40리인데 고갯길이 매우 험했다. 여기서 50리를 가면 곤양(昆陽)공간이라고 한다. 역에서 한 마장쯤에 몇 칸짜리 빈 건물이 우뚝하게 홀로 서있었다. 바로 봉계원(鳳溪院)공간이었다.
日出後發行 踰切懸峙 卽村後峻嶺也 又踰婁里峙 今行所經中最峻 地異山上峰接近 可以手撫 自此以去 積雪未消 山野皆白 行李甚艱 路傍有鄕校 卽河東地云 過午堇達鳳溪驛秣馬 自宿處四十里 而嶺路多艱 將至五十里 卽昆陽地云 驛之一馬場許有數間空宇 巍然獨立 卽鳳溪院也
해가 진 뒤 사천공간 작살촌(雀殺村)공간정계남(鄭戒男)인물의 집에서 묵었다. 정계남인물은 밥을 마련하여 대접했다. 그야말로 어진 주인이다. 봉계원공간에서 여기까지 30리라고 했다. 그런데 눈이 녹아 길이 질척거리고, 몇 번이나 험한 고개를 넘어오다 보니 거의 40리나 되었다.
日沒後 宿泗川地雀殺村鄭戒男家 備饌以待 可謂賢主人 自鳳溪至此三十里云 而雪融路泥 屢踰峻峙 殆至四十里
영남을 가는 길은 거리가 매우 먼데다가 초행이라 길을 물으며 가다보니 우왕좌왕한 일이 많다. 진주 해창공간 앞을 경유하여 묵을 곳에 도착한 것인데, 길은 험하고 갈 길은 아직도 머니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 말로 할 수가 없다.
嶺路里數甚遠 且非曾經 問路而行 迂枉亦多 由晉州海倉前而抵宿處 行李間關 前路尙遠 悶苦不可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