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0218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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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2월 17일 丁丑년 癸卯월 己亥일, 양력 1697-03-10 1697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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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2월 18일 기해
十八日 己亥
맑음
데리고 온 노(奴) 차봉(次奉)노비을 떨어뜨려 보냈다. 아침밥을 먹고 난 뒤 길을 떠나 10리를 가서 송치(松峙)공간를 넘었다. 다시 20리를 가서 옥곡원(玉谷院)공간을 지나고, 10리를 가서 또 수달치(水達峙)공간를 넘어 섬거역(蟾渠驛)공간에서 말을 먹였다. 20리를 가서 섬진강공간을 건너니 바로 두치강(豆致江)인데, 진주공간목사(牧使)개념남지훈(南至熏)인물이다】의 경계이다. 우치(牛峙)공간를 넘으니 해가 이미 산에 걸렸다.
帶來奴次奉落送 朝食後發行 行十里踰松峙 又行二十里 過玉谷院 行十里 又踰水達峙 秣馬于蟾渠驛 行二十里渡蟾江 卽豆致江晉州【牧使南至熏】界也 踰牛峙 日已啣山
길가 마을에 투숙하려했는데 양반집이라 하면서 거절하기에 다시 어느 마을에 투숙하려 했지만 전염병이 돌아서 이웃마을로 이동했다. 그런데 집안에 앓는 소리가 나 유숙할 수 없어서 방황하던 차에 건너 마을에 양(梁) <Term id="M545" name="좌수">좌수인물</Person>네 집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곧장 그쪽으로 이동하여 하룻밤 머물기를 청했지만 양 <Term id="M545" name="좌수">좌수인물</Person>가 응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상놈 집에 투숙하였더니, 양 <Term id="M545" name="좌수">좌수인물</Person>가 비로소 사람을 보내서 ‘병이 든 데다 객방도 없어서 데리고 와 머무르게 할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주인 또한 매우 불손하니 참으로 괴로웠다. 이 마을은 바로 진주 땅공간으로 이름은 우리골(右里谷)공간, 섬진강공간에서 10리 떨어진 곳이다. 예전에 듣기로 영남의 인심은 순박하여 길손을 꺼리지 않고, 양반의 경우에는 예전부터 알고지낸 사이건 아니건 매우 정성스럽게 대접한다고 했는데, 겨우 진주공간의 경계에 들어섰을 뿐인데도 인심이 이렇게도 불량하다. 선현의 유풍과 풍속이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으니 통탄스러움을 이길 수 없다.
投入路傍村 稱以兩班家而拒之 又投一村有染患 移往隣村 房內有痛聲不可留宿 彷徨之際 聞越村有梁座首家 卽爲移往願留一夜而不應 不得已投入常漢家 則梁也始送人 辭以有疾且無客房 不得引留云 而主人亦多不順 良可苦也 此村卽晉州地 村名右里谷 自蟾江十里也 曾聞嶺南俗淳 不忌行客 至於兩班 則不問曾識與否 待之甚款 而才入界 人心之不淑如此 先賢之遺風餘俗 掃地盡矣 可勝歎哉
○오늘 다시 해를 둘러싼 햇무리가 졌다. 어찌 무지개의 이변이 이 정도까지 이른단 말인가. 평범한 햇무리인줄 의심했는데 무지갯빛마저 있었으니 범상치 않다.
○今日又有圍日之暈 豈有虹變至此哉 疑是尋常日暈而第有虹色 是可異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