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0220

jiamdiary
이동: 둘러보기, 검색


1697220
← 이전 다음 →
1697년 2월 19일 丁丑년 癸卯월 辛丑일, 양력 1697-03-12 1697년 2월 21일


태그숨기기


원문이미지보기


1697년 2월 20일 신축
二十日 辛丑
맑음
해가 뜰 때쯤 길을 떠났다. 사천읍공간 앞을 경유하여 50리를 가서, 고성향교(固城鄕校)공간에 도착하여 물품을 먹였다. 여기서 고성 관아공간까지는 5리다.
平明發行 由泗川邑前 行五十里 到固城鄕校秣馬 自此距官門五里
사천공간부터는 산세가 약간 트이고 들판도 꽤 넓었다. 그리고 섬진강공간 동쪽은 논이 많고 밭은 매우 드문데 토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고성(固城)공간이란 읍은 성이 바닷가를 굽어보고 있고 산이 주위를 둘러싸고 바다로 막혀 있어 경치가 꽤 좋다. 땅이 좁지 않고 고기잡이도 풍성하니 풍토병만 없다면 이름난 고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천공간이든 고성공간이든 으레 때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 수령이 되어 몸을 상하여 죽은 사람이 많다. 이 점이 안타깝다.
自泗川山勢稍開 原野頗廣 而蟾江以東畓多 而田則絶稀 土俗然也 固城爲邑 壓臨海岸 山回海停 景致頗好 幅圓不狹 魚産且饒 若無水土之疾 則雖謂之名邑 可也 而彼此間例以失時之人爲宰 多有中傷而死者 是可嘆也
고성읍공간을 지나 20리를 더 가서 대치(大峙)공간를 넘었다. 그곳의 지세가 더할 나위 없이 험준하였으나 터놓은 길이 구불구불하고 길이 매우 순탄했다.
穿過邑里 行二十里 踰大峙 其勢極峻 而開路盤旋 路勢頗順
고개공간에서 10리를 가 구화역(仇火驛)공간에 도착하여 묵었다.
自峙行十里 到仇火驛止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