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40414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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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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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년 4월 13일 甲戌년 己巳월 辛巳일, 양력 1694-05-07 1694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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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년 4월 14일 신사
十四日 辛巳
맑음
宋秀杞崔井翊尹時三來
○오후에 노(奴) 동이(同伊)노비물품을 길들이기 위해 자고개(尺峴)공간에 나갔다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정(鄭) 판서(判書)인물 대감이 지나는 길이라면서 전갈하기를, 내일 진도 공간 배소(配所)로 들어가야 하니 오늘 저녁 나와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한다.
○午後奴同伊爲調馬出往尺峴 而還報曰 鄭判書大監過云傳語 明當入進珍島配所 今夕要與相見云
내가 바로 물품을 달려 해남읍공간정(鄭) 대감인물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가니 해남 현감인물이 이미 와 있었다. 내가 일의 연유를 물었더니 정(鄭) 대감인물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들이 쫓겨나 귀양 가게 된 것이 자던 새가 둥지에서 놀라 깬 것과 같아,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90세 된 편친(偏親)을 영원히 결별하고 와서 정황이 매우 슬픕니다. 일의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우의정개념 민암(閔黯)인물영의정개념 권대운(權大運)인물좌의정개념 목래선(睦來善)인물을 청하여 함께 빈청(賓廳)에 앉아 소매에서 문서 1축을 꺼냈는데, 바로 함이완(咸以完)인물이 말한 김춘택(金春澤)인물, 한중혁(韓重爀)인물 등이 저자거리의 은(銀)물품을 빌려서 한 쪽(一邊, 남인)을 해치는 일을 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김춘택인물은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인물의 손자이며, 한중혁(韓重爀)인물한구(韓構)인물의 아들입니다. 빈청에서 임금께 청대(請對)하여 모두 아뢰자, 즉시 김춘택인물, 한중혁인물 등과 저자거리에서 은화물품를 빌려준 사람들을 붙잡아 가두었습니다. 죄인들을 추궁하여 조사해 보니, 사건의 정황이 더욱 의심스러웠습니다. 판의금부사개념 류명현(柳命賢)인물이 ‘사건의 심각함이 이와 같으니, 의금부개념에서 조사하여 다스리는 것은 옥사(獄事)의 체모로 볼 때 적절하지 않다.’고 하고, 즉시 청대(請對)하여 정황을 다 아뢰었으나 이것이 오히려 국청의 설치를 당기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체포하는 관원이 사방으로 나갔는데, 신식(申軾)인물이 체포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김인(金寅)인물이라는 자가 고변서(告變書)를 올렸습니다. 김인인물순창공간의 사인(士人)입니다. 이른바 고변서는 신천군수 윤희(尹憘)인물김원섭(金元燮)인물민장도(閔章道)인물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 편지에 ‘때가 오면 행하라’는 말이 있으나, 그 뜻은 모르겠습니다. 아마 윤희인물김원섭인물, 민장도인물와 전에 서로 상의한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생각건대, 은(銀)물품을 끌어 모으는 것이 정국을 뒤엎을 흉계를 위한 것이라고 의심하여 그렇게 언급했을 것입니다. 김인인물이 이를 가지고 고변하여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습니다. 상(上)인물이 진노하여 즉시 명하여 권대운인물목래선(睦來善)인물을 삭탈관직하여 내치고 민암(閔黯)인물대정(大靜)공간에 위리안치했으며, 판의금부사개념 류명현인물흑산도공간지의금부사개념 정유악(鄭維岳)인물진도공간이의징(李義徵)인물훈련대장개념지의금부사개념로서 김인인물의 인용한 고변에 나왔기 때문에 거제(巨濟)공간에 정배했습니다.” 운운했다. 아래는 초하루 조보(朝報)개념의 내용인데, 강진현감인물이 보여준 것이다. “남구만(南九萬)인물영의정개념으로, 윤지완(尹趾完)인물우의정개념으로, 박세채(朴世采)인물좌의정개념으로 삼았으며, 류상운(柳尙運)인물이조판서개념로, 서문중(徐文重)인물병조판서개념로, 신여철(申汝哲)인물훈련대장개념으로 삼았다. 그 밖 여러 군영의 대장은 뽑지 못해 신여철인물로 하여금 오군영개념의 부신(符信)을 차게 했는데, 신여철인물이 상소하여 사직한 어영장(御營將)개념서문중인물으로 하여금 겸직하게 했다. 영의정개념 남구만인물은 멀리 결성(結城)공간에 있고 이조판서개념 류상운(柳尙運)인물광주(廣州)공간에 있는데, 역마를 돌려보내고 오지 않았다. 전임이 이미 물러나고 신임이 나오지 않아 조정이 일시에 비어 버렸다. 영의정개념, 좌의정개념, 이조판서개념, 병조판서개념 및 삼사를 제배(除拜)한 것이 모두 주상인물께서 스스로 한 것이었다. 이어 비망기개념를 내려 송시열(宋時烈)인물, 박태보(朴泰輔)인물 등을 복관(復官)하고 치제하게 했으며, 김석주(金錫冑)인물, 김익훈(金益勳)인물 등도 복관하고 가산을 돌려주었다. 또 비망기개념를 내려, ‘거센 신하의 흉악한 잔당으로 감히 국본(國本)을 흔드는 자와, 폐인(廢人)인물, 홍치상(洪致祥)인물, 이사명(李師命)인물 등을 신구(伸救)하는 자는 마땅히 역률(逆律)로 논단할 것이며, 이상(李翔)인물을 위해 신구하는 자는 중률(重律)로 논단할 것이다.’라고 하교하셨다.” 이 이후 소식을 듣지 못하여 몹시 답답하다.
余卽馳往海邑鄭台下處 則主倅已來在 余問事之所由 則鄭笑而言曰 吾輩竄逐 有同宿鳥驚栖 不知所以 但九十偏親永訣而來 情事慘然 事之根因 則右相-卽閔黯-請與領-權大運-左-睦來善-相爲賓廳之坐 自袖中出一軸文書 卽咸以完所告 金春澤韓重爀等 貸出市銀 謀害一邊事也 澤卽光城之孫 爀卽韓構子也 自賓廳請對具陳 卽爲拿囚澤爀等及市井許貸銀貨之人 而推覈 則獄情轉涉危疑 判金吾柳命賢以爲 事機如此 自金吾推治 獄體未安 卽爲請對陳達 而設鞫頗有所引 逮捕四出 申軾之被拿 亦以此也 如是之際 有金寅者上變書 寅卽淳昌士人 所謂變書 乃信川郡守尹憘抵金元燮閔章道書札也 其書有及時爲之之語 未知其意 而憘盖與金閔 曾有所相議 想以聚銀疑有飜局計 故及之也 金寅執此以告恐動之 上震怒卽命領左相 削黜右相大靜安置 判義禁柳命賢黑山 知義禁鄭維岳珍島 李義徵訓將兼知義禁 且出於寅之引告巨濟定配云云 此以下初一日朝報 金陵倅所示 以南九萬爲領相 尹趾完爲右相 朴世采爲左相 柳尙運爲吏判 徐文重爲兵判 申汝哲爲訓將 其他諸局將任未及差出 令申汝哲兼佩五局符 因申之疏辭御營將 則令徐文重兼察 而南首揆遠在結城 柳吏判則在廣州 而退送馹騎不來 舊旣退而新不出 朝廷一空 領左相吏兵判及三司除拜 皆上自爲之 仍下備忘 宋時烈朴泰輔等復官致祭 金錫冑金益勳等 亦復官爵還給家財 又下備忘曰 强臣兇孼 敢有動搖國本 及爲廢人洪致祥李師命等伸救者 當以逆律論斷 而爲李翔伸救者 論以重律爲敎 此後消息 未能聞知 鬱鬱
정 대감인물과 한참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밤중에 집으로 돌아왔다.
○與鄭台晤語良久 乘夜還家
윤후지(尹後摯)인물가 와서 잤다.
尹後摯來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