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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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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4월 5일 丙子년 癸巳월 辛卯일, 양력 1696-05-06 1696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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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4월 6일 신묘
六日 辛卯
맑음
이른 아침을 먹고 출발하여 고금도 남쪽 나루공간에 도착하니, 나룻배물품가 건너편에 있었다. 연기를 태워 알리고 소리를 높여 불러도 한참이나 답이 없었다. 나는 안장깔개물품를 깔고 한숨 자다가 일어나 노(奴)에게 다시 소리치게 하여, 그제야 배가 와서 건널 수 있었다.
早食而發 到古今島南津 津船在越邊 燒煙以示之 高聲以呼之 而久不應 余藉鞍褥穩睡而起 使奴更呼之 乃始至得渡
목(睦) 상(相)인물께 인사드리니 잠시 후 소찬(小饌)을 내왔다. 본진(本鎭, 신지도진)공간 만호(萬戶)개념인물도 음식을 내와서 잠깐 사이에 점심을 억지로 먹었다. 목(睦) <Term id="M586" name="참판">참판(參判)인물</Person>과 함께 밖으로 나와서 조금 노닥거리다 헤어졌다.
拜睦相 俄進小饌 本鎭萬戶又進饌 須臾强捧晝飯 與睦參判退出外次 謔浪小頃而別
복만(福萬)인물이라는 총각이 나루까지 따라왔다. 이 사람은 바로 권휘(權徽)인물의 외손이며 목(睦) 상(相)인물에게는 6촌 손자가 된다. 사람됨이 영민하고 사랑스러워서, 목(睦) 상(相)인물이 잠시도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목(睦) <Term id="M586" name="참판">참판(參判)인물</Person>이 만호(萬戶)개념인물에게 왜선(倭船)물품을 얻어주어서 건넜다.
丱者福萬隨至津頭 此乃權徽外孫 而於睦相爲六寸孫 爲人英敏 可愛 睦相使不離眼前 參判請得倭船於萬戶以濟之
해가 진 후 이(李) 영감인물거처공간로 돌아와 함께 잤다.
日沒後 還到李令所 同宿
내가 이(李) 영감인물에게 죽도기(竹島記)를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야 탈고하여 주었다.

죽도기
세간의 말에 선산(仙山)이 바다 가운데에 있다고 하나 영경(靈境)에 올라 영약(靈藥)을 먹고 세상 밖에서 하늘을 훨훨 난 사람이 있지 않으니, 그 말은 결국 과장된 것이다. 요컨대, 바닷가에 살면서 빼어난 절경을 누리며 고인(高人)과 운사(韻士)가 유유히 거닌다면, 그곳을 바로 선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죽도공간라는 섬이 우리나라 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초목은 새파랗게 무성하다. 기이한 암석이 잔뜩 쌓여 있고 바다의 조수와 강가의 물결은 앞마당까지 들락날락거린다. 깊고 아득한 범상치 않은 경관과 홍쟁소슬(泓崢蕭瑟)의 경지가 올라가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문득 흉금이 트여 마치 차가운 바람을 타고 끝없는 허공으로 오를 것처럼 만드니, 바닷가에 살면서 빼어난 절경을 누린다고 이를 수 있는 곳은 여기에 앞서 손꼽을 만한 곳이 없다. 그런데도 백대(百代)를 거치는 동안 안목을 갖춘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작고 뚝 떨어진 언덕이 결국 잡초 우거진 땅이 되고 말아 남쪽 바다 유랑민들이 집을 짓는데 사용하거나 욕심 많은 늙은이가 개간하여 땅이나 부쳐 먹으며 끝내 명승지의 칭호를 얻지 못했으니, 이 어찌 섬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나의 늙은 벗 윤(尹) 공 재경(載卿) 보(甫)는 명문집안의 후손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현달한 관직을 거쳐 성대한 명성과 영예를 얻었으나, 성품이 소탈하고 고고하여 벼슬길을 즐기지 않아 벼슬을 그만두고 남쪽으로 돌아와 이 섬에 집을 지었다. 몇 무(畝)의 부지에 세 칸짜리 집을 지어 여름을 시원하게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공간을 갖추어서 바다 가운데 빼어난 절경을 하루아침에 차지하였다. 이곳에서 맑고 시린 파도에 몸을 씻고 바위 산 등성이에 정(情)을 마음껏 발산하며 편안하게 늙어가면서 훌훌 세상을 떠나 홀로 설 뜻을 두고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헌신짝처럼 보니, 저 소위 고인과 운사가 또한 어찌 (…). 벼슬이 가장 높은 사대부가 바닷가 가장 아름다운 곳을 차지하여 (…) 숨겨진 땅을 개척하여 새로 집을 지으니, 산은 그 빼어남을 더하고 (…) 해와 달은 그 맑은 아름다움을 더하여, 조망하며 답답함을 해소하는 사이에 지극한 즐거움이 따라온다. (…)야 어찌 말할만한 것이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이 섬을 가리켜 봉래(蓬萊)와 영주(瀛洲)라 하고 우리 공을 가리켜 신선의 짝이라 하니, 억지로 붙인 이름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청복(淸福)을 누리면 호방한 거동이 적고, 부귀 가운데 처하면 한가한 정취가 적다. 옛일을 두루 살펴보아도 두 가지를 온전하게 갖춘 경우는 거의 없는데, 오직 공만은 출세 길에서 발을 빼어 시원한 언덕에 깃들어 살면서 눈앞에 농토가 가득하고 음악 소리 귀에 끊이지 않는다. 적막한 물가를 소요하면서도 보고 듣는 즐거움을 다하고, 술병과 술잔을 늘어놓고 마음껏 놀면서도 넉넉하고 한가한 정취를 잃지 않으니, 옛사람이 “허리에 10만 관(貫)을 차고 학을 타고 양주(揚州)로 가겠다”고 한 것이 공에 견주어 어떠한가? 나로 말하자면 세상일에 매여 젊어서 자그마한 언덕 하나도 경영하지 못하다가, 다 늙은 나이에 법망에 걸려 한 치 좁은 땅에 몸이 갇힌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만일 주상전하께서 가엾게 여겨 죄를 용서해 주신다면, 조각배 타고 짧은 노를 저으며 안개 피어오르고 파도치는 아득한 곳에서 공을 따라 노닐겠지만, 우선 이 글을 써서 주며 나중에 마음에 두고 회상할 자료로 삼는다.



시(詩)

날랜 배 타고 상앗대 저어 세찬 여울 피해 섬에 올라
허공 밖 산천 뿌듯하게 바라보네
바다 아지랑이 걷히며 강물 위로 달 떠오르는데
하늘 가득 별들이 막 기울어 가네



또 한 수

푸른 여울 굽어보는 작은 집 새로 지었으니
세상 사람들은 이곳의 풍광 보지 못하게 하리라
섬돌 앞에서 늘 천 그루 대나무 얻을 수 있으니
묻노라, 며칠이면 하늘까지 닿는지



병자년(1696) 4월 단애산인(丹厓散人) 원방(元方) 이현기인물 지음
余曾要竹島記於李令 今乃脫藳以贈

竹島記
世言仙山在海中 而亦無有躡靈境餌靈藥翺翔於物表者 則其說終歸於夸矣 要之居海上擅奇勝 而高人韻士之所盤旋而徜徉者 斯可謂之仙山也 竹之爲島也 在吾東極南巨浸之中 雲烟蒸蔚 草木葱蘢 奇巖異石飣餖於左右 海潮江濤吐納於階庭 幽遐詭怪之觀 泓崢蕭瑟之致 使人人登望者 無不怳然闓暢 若將御冷風而昇寥廓 則夫所謂居海上擅奇勝者 宜無先此而屈指 而經閱百代不得遇一人具眼 堆阜斷壠 遂爲榛莽之區 蜑戶處之以規其利 老洫墾之以食其土 終不得以勝地稱 則玆豈非是島之不幸也哉 余老友尹公載卿甫 以奕舃衣冠之冑 由制科踐華顯 蔚有聲譽 而性簡倨 不樂進取 已仕而歸于南 就玆島而屋焉 數畝之室 三架之椽 凉燠之所備矣 而海中奇勝 一朝而專之 於是乎澡身淸冷之波 放情巖峀之阿 身閑髮白 飄飄然有遺世獨立之志 視世之富貴利名 不啻若弊屣 則夫所謂高人韻士者 亦豈有於■■哉 夫以朝中最高之士 占海上最勝之■…■翳 彰幽闡隱 創新改覯 山增其奇■…■曠朗 日月增其淸美 其眺望陶寫之間 至樂隨之 ■■上淸之遊 曷足道哉 由是而指玆島爲蓬瀛 指我公爲仙侶 不可謂之强名也 雖然享淸福者少豪擧 處富厚者寡閑趣 歷數前古 尠有兩全 而獨公拔足名塗 棲身爽塏 田疇滿眼 絲管沸耳 逍遙寂莫之濱而兼盡視聽之娛 放浪壺觴之次而不失優閑之趣 則古人所謂腰纏十萬貫 跨鶴上揚州者 其視公何如也 若余者 世故纏繞 少不能營一丘 逮白紛絓文罔 局影於方寸地者 已三年矣 倘聖朝憐其■宥其罪 則當以扁舟短棹從公於烟濤渺茫之中 姑書此以還之 以爲異日存想之地云



詩曰

虛舟回棹避驚湍
空外山川滿意看
海靄欲收江月上
一天星斗正闌干



小築新成俯碧湍
風光不許世人看
階前長得千竿竹
借問雲霄幾日干



赤鼠維夏 丹厓散人李元方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