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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3일 (월) 10:39 판
1697년 1월 25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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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1월 24일 | 丁丑년 壬寅월 丁丑일, 양력 1697-02-16 | 1697년 1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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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1월 25일 정축
二十五日 丁丑
흐리다 맑음
陰陽
○최근 들으니, 양득중(梁得中)인물이 처음에 재랑(齋郞)개념[1]에 제수되었다가 같은 날 인사에서 사재감(司宰監)개념 주부(主簿)개념로 옮겨 제수되었다고 한다. 양득중인물은 일찍이 학자로서 이름을 얻었는데, 부친상에서 탈상하자마자 곧바로 지평(持平)개념에 제수되었다. 유지(有旨)가 반드시 조만간 이어서 이를 것이니, 장하다고 할 만하다.
○頃聞梁得中初拜齋郞 同日政旋移司宰主簿 梁早得學者之名 才脫父喪 卽得除拜持平 有旨必不日而繼至 可謂壯哉
○서울공간의 재자(才子)인 진사개념 정혁(鄭爀)인물이 곽만성(郭萬成)인물의 사위가 되어 저전동(楮田洞)공간에서 처가살이하고 있었는데, 숙질로 연말에 갑자기 죽었다. 오늘 석포(石浦)공간에 임시로 장사를 지냈는데 흥아(興兒)인물가 어제 갔다가 오늘 저녁에 돌아왔다.
○洛下才子鄭進士爀 爲郭萬成女壻 贅居楮田洞 以宿疾歲前奄忽 今日權窆于石浦 興兒昨日進去 今夕還
주석
- ↑ 재랑(齋郞): 묘(廟), 사(社), 전(殿), 궁(宮), 능(陵), 원(園)의 참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