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90204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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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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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2월 3일 己卯년 丁卯월 甲辰일, 양력 1699-03-05 1699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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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2월 4일 갑진
四日 甲辰
맑음
김태귀(金泰龜)인물가 왔다.
金泰龜來
○지난 갑인년(1674년) 윤(尹) 백호(白湖)인물귀릉(龜陵)인물[1]을 복위해야 한다는 논의를 낸 이후 미상(眉相)인물에게 편지를 보내 질의했는데, 미상인물이 안 된다고 하면서 그 답장에서 “임금의 허물을 말하는 것은 임금에게 간(諫)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고, “세조(世祖)를 어떤 지경에 두려는가?” 등의 말까지 하여[2] 그 논의가 마침내 잦아들었다. 지금 신규(申圭)인물단종인물 복위의 의논을 진달하는 상소를 올리자 임금인물이 이를 경청하여 백관들의 의논을 수합하라고 하셨는데, ‘불가’하다고 한 사람이 10명 중 7, 8명에 달했고 남(南) 상(相)인물도 불가함을 역설했으나, 좌의정개념 윤지선(尹趾善)인물이 홀로 이를 주장하여 일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이 일로 과연 훗날 또 다른 논란이 생기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向在甲寅之後 尹白湖發龜陵復位之議 抵書眉相以質之 眉相以爲不可 其覆書有曰 言君之過 異於諫君 至有置世祖於何地等語 其議遂寢 今者申圭疏陳此議 上傾聽之 有百官收議之擧 不可者什居七八 南相力陳不可 而獨左相尹趾善主之 事遂決 未知此事果無後來之議否也


























주석[ ]

  1. 내용상 ‘노릉(魯陵)’을 잘못 쓴 것으로 추정된다. 노릉은 단종이 복위되고 장릉(莊陵)으로 추봉되기 이전의 능호이다.
  2. 이 편지는 윤휴가 1679년에 쓴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허목의 문집 《기언(記言)》 권51에 〈答希仲書〉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편지에서 허목은 단종 복위를 위한 차자를 올려 달라는 윤휴의 청을 거절하면서, 신하로서 선왕의 처분을 뒤집어 단종의 복위를 청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세조를 어떤 지경에 두려하는가”라는 구절은 허목의 원래 편지와 다르다. 허목의 편지에서는 자신의 반대에 대한 근거로 정릉(貞陵) 복원 사례를 거론하며 선왕인 현종이 “태종을 어떤 지경에 두려는가?”라고 말한 예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