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81114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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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11월 13일 戊寅년 甲子월 甲申일, 양력 1698-12-15 1698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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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11월 14일 갑신
十四日 甲申
잠깐 비가 내림
乍雨
지난 번 죽도(竹島)공간에서 모였을 때, 다시 다음 약속을 정하여 안(安) 우(友)인물에게 주관하게 했다. 안(安) 우(友)인물가 어제 사람을 보내 황어사(黃魚寺)공간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황어사는 거리가 20리 남짓이어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였다.
頃日竹島之會 又定後期 令安友主辦 安昨送伻 期會於黃魚寺 寺之距此二十里餘 朝食後發
건교치(乾橋峙)공간 아래에 도착해서 비를 만나 길가의 빈집에 들어갔다. 안형상의 동생 안몽상(安夢相)인물이 새 집터로 정한 곳인데, 아직 다 짓지 못한 것이다. 잠시 후에 두 사람이 비를 피해 걸어와서 나를 보고 말하기를 “저희는 이시창(李時昌)인물, 나달효(羅達孝)인물인데 옥룡동(玉龍洞)공간에 살며 안형상인물의 초청으로 황어사공간의 모임에 갑니다.”라고 하였다.
到乾橋峙下 逢雨投入路傍空舍 卽安友之弟夢相自卜新基 結構未完者也 俄有兩生避雨步至來見我曰 李時昌羅達孝 居在玉龍洞 以安生之招 赴魚寺之會云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쳐 뒤쪽 고개를 넘어 황어사공간에 도착하였다.
須臾雨止 踰後峙到寺
황어사공간는 골짜기 안에 있었는데 단칸방에 볼 만 것은 없었다. 집은 모두 죽림(竹林)으로 둘러쳐 있는데 승도(僧徒)들은 우수영(右水營)의 세력을 빙자하여 군현에 배정된 역(役)을 거부하려는 심산으로 죽림을 우수영에 소속시켰다. 이에 중들이 즐거이 투탁하여 들어온 까닭에 절은 작아도 중은 가장 많았다.
寺在谷中 而單房無他可觀 繞舍皆竹林 僧徒欲籍營門之勢 以据本官之役 以竹林托屬右水營 僧輩樂爲投入 故寺少而僧最多
안형상인물이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한천(寒泉) 문장(門長)인물과 그의 둘째 아들인물, 이홍임(李弘任)인물, 윤척(尹倜)인물, 윤간(尹侃)인물, 남궁량(南宮玉+亮)인물, 배옥(裵沃)인물이 이어서 도착하였다. 배옥(裵沃)인물은 대산(大山)의 정(鄭) 보성(寶城)인물의 외손인데 서울에 살다가 내려와 태인(泰仁)에 우거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남궁량인물은 어버이를 떠나 내려온 지 1년이 넘었는데 머뭇대다가 돌아가는 것을 잊고 한천인물의 뒤를 꼭 따라다니는 자이다. 그 외에 김진일(金震一)인물, 노유삼(魯有參)인물 등 네다섯 사람이 있었는데 가요(歌謠)와 잡희(雜戱)를 위해 안형상이 불러온 사람들이다. 안형상의 가야금 타는 비(婢), 한천의 거문고 타는 비(婢)와 피리부는 동자는 과일상의 배[1]이다. 한천인물이 또 관산(冠山)공간의 금환(琴鬟)인물을 찾아서 데려왔다. 닭이 울 때까지 놀아도 단란함이 끝이 없어, 지리하다고까지 할 만하다. 잠깐 잠을 잤는데 날이 밝았다. 양생(養生)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지 않을 짓이다. 우습다.
安友先至以待 寒泉門長及其次胤與李弘任尹倜尹侃南宮(玉+亮)裵沃繼至 裵是大山鄭寶城之外孫 居洛下而來 寓泰仁屬耳云 南宮則離親下來 已周歲有餘 而淹滯忘歸 必隨寒泉之後者也 其餘金震一魯有參等四五人 以歌謠雜戱爲安友所邀來 安之倻寒泉之琴笛 乃是行果之梨 而寒泉又覓冠山琴鬟而來 直至鷄曉 團欒未已 雖謂之支離可也 乍就枕而天明 養生者之所必不爲還 可笑也
























주석[ ]

  1. 과일상의 배: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사람들임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