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80711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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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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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7월 10일 戊寅년 庚申월 癸未일, 양력 1698-08-16 1698년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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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7월 11일 계미
十一日 癸未
혹은 흐리고 혹은 맑음. 가랑비가 간간이 뿌림.
或陰或陽 微雨間洒
○저녁무렵 비가 내렸다.
○向昏雨作
○金別將去

죽도(竹島)공간 초당(草堂)이 화재를 당한 후 우연히 읊다

회록(回祿)[1]이여, 어이하여 초당을 태웠는가
죽도의 풍광을 홀로 차지한 내가 싫어서이겠지
사람들이여, 내가 거처할 곳 없다고 한탄하지 말라
솔 그늘 아래 앉아 있노라면 흥이 더욱 유장하리니



묵은해를 보내는 시(詩) 서문

한 해의 마지막 날이면 사람은 반드시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일게끔 되니, 어떤 이는 단란하게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그 해의 마지막 저녁을 즐기고, 어떤 이는 떠들썩하게 도박판을 벌이며 마지막 밤의 한 순간을 최대한 길게 누리려 한다. 이는 사람의 정리 상 꼭 그렇게 되니,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연로하신 부모님에 생각이 미치면, 오늘이 쉬이 감이 아쉽고 누릴 날이 많지 않음이 두려우니, 가는 세월을 탄식하는 감상이 어찌 다만 섣달그믐일 뿐이겠으며, 섣달그믐의 감상이 또 어찌 먼 객지에 떠도는 사람의 정일뿐이겠는가? 나의 경우 운명은 기구하고 신세는 외로우니, 천지간에 다만 하나의 궁박한 사람일 뿐이다. 섬길 부모님도 없을 뿐더러 인생을 즐길 뜻도 없으니, 계절이 가고 오건 머리가 세건 나이가 먹건 애초에 내 마음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 세상 홀로 가면서 오로지 인생이 거품처럼 태어나 휴식하는 것처럼 죽는데 맡기고 늙어갈 뿐이다. 환난[2]을 당한 이래로는 더욱 이 몸이 보잘 것 없음을 느끼니, 매번 소동파(蘇東坡)의 “세월을 채우기 쉽지 않으니, 억센 활을 한 치 한 치 당기는 것 같네”[3]라는 구절을 읊을 때마나 길게 탄식하지 않는 때가 없다. 그리하여 내 61년 세월을 돌아보면 애통함을 품고 있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1년 360일 낮밤으로 감상을 더하게 되지 않음이 없었다. 이를 통해 보면 나의 앞뒤 병자(丙子)년이 모두 원수가 될 만하니, 내가 세월에 대하여 어찌 지나감을 애석해하며 마음을 쓰는 뜻이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은 해가 바뀔 때 반드시 감상이 일어나게 마련이며 해가 바뀌는 때는 하늘이 큰 변화를 만나는 마디이니, 여기에 대하여 느끼는 감상은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이며 늙음에 대한 한탄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내가 병자년을 두 번째 만났다가 또 이를 보내게 되었으니, 간절한 마음 쉽게 격해지고 백 가지 감정이 가슴을 꽉 채운다. 묵은해를 보내는 감정을 어찌 보통 사람들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한밤중에 심지를 돋워 불을 밝히고 꾸역꾸역 소회를 서술하고, 이어서 아래와 같은 시를 짓는다.



한밤중 베게 어루만지며 홀로 잠 못 이루어
외로운 백발노인 눈물만 끊임없이 흘리네
나이 먹어 다가올 나날 슬퍼함이 아니요
늙음이 애달파 가는 해가 애석한 것도 아니라네
옥에 갇혔던 다섯 달 어찌 차마 이야기하리오
만 겹 쌓인 원한의 기운이 하늘을 찌르네
어째서 병자년은 이토록 나를 유달리 싫어하는가
묵은해 보내는 시를 지으니 더욱 멍해지네

竹島草堂被火後偶吟

回祿胡爲燒草堂
也應嫌我擅風光
傍人莫歎居無所
露坐松陰興更長



送舊詩序

人於歲除之日 必有戀舊之心 或盃酒團欒 以娛一年之餘暉 或博塞歡呼 以永片時之殘宵 此乃人情之所必至 而古今之所同然也 至於高堂親老 孝思無限 惜此日之易過 懼來日之無多 則歎逝之感 豈但歲除之日 而除日之感 又豈但遊人遠客之情而已哉 若余者命道崎嶇 身世零丁 特一天地間窮薄之人也 旣無愛日之地 又無樂生之意 時序之去來 齒髮之衰健 曾不關涉於心頭 踽踽斯世 一任此生之浮休者 少而老矣 逮遭患難以來 尤覺此身之支離 每吟坡老詩 歲月不易滿 寸寸彎强弓之句 而未嘗不喟然長吁 然則顧我六十一年之星霜 無非含痛之日 三百六十之日月 亦無非增感之資矣 以此觀之 則余之前後丙子 適足爲讐 我之日月 更安有眷眷惜去之意哉 然而人心之感 必發於歲改之際 而歲之遷改 卽天遭大變之節 則其所以感之者不一其端 而不但以歎老爲也 況余重逢丙子又送丙子 則危衷易激 百感塡膺 送舊之情 豈與尋常人比哉 挑燈半夜 聊述所懷 繼之以詩



撫枕中宵獨不眠
零丁白髮涕漣漣
非關添齒悲來日
不是傷衰惜去年
五朔圓扉那忍說
萬重寃氣欲干天
如何丙子偏讐我
送舊詩成更惘然

내가 병자년(1697) 가을 종서(宗緖)인물의 환난을 만났고, 겨울에는 왼쪽 어깨의 창(瘡)이 심하여 위중한 상태가 되기도 했다. 섣달그믐에 감회가 생겨 이 시를 지었으나, 시어(詩語)가 너무 괴로워 다시 보고 싶지 않아 내버려두고 수록하지 않았다. 마침 예전 종이에서 그 시를 발견하였기에 늦었지만 부족하나마 수록한다. 제3구[4] 때문에 더욱 좋지 않은 마음이 들고 나도 모르게 가슴이 막힌다.
余於丙子秋遭兒子患難 其年冬左肩瘡重濱危 及至歲除之日有感作此 而辭語太苦 不欲重覽 置而不錄 適於故紙得之 聊爾追錄 第三句更惹惡抱 不覺胸塞

























주석[ ]

  1. 회록(回祿): 화재의 신.
  2. 셋째 아들 윤종서(尹宗緖)의 죽음.
  3. 소식(蘇軾)의 〈次前韻與子由〉시에 나오는 구절. 원문에는 ‘歲月’이 ‘百年’으로 되어 있음.
  4. 내용상 제3연을 가리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