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80313
jiamdiary
1698년 3월 13일 | ||
← 이전 | 다음 → | |
1698년 3월 12일 | 戊寅년 丙辰월 戊子일, 양력 1698-04-23 | 1698년 3월 14일 |
태그숨기기
원문이미지보기
1698년 3월 13일 무자
十三日 戊子
맑음
陽
김려휘(金礪輝)인물가 말하기를, 여기서 멀지 않은 한안촌(寒岸村)공간【한의아리】이라는 곳 앞에 쌓아 놓은 제언이 있는데 가서 보고 싶다고 하였다. 아침을 먹은 뒤에 가서 보니 제언을 쌓은 발[把]의 수가 250여 발에 이르렀다. 물이 얕아 쌓기가 쉬웠고 또한 바람을 받지 않았다. 그 안은 매우 넓어 30석을 심어도 될 듯 하니 얻기 어려운 땅이라고 이를만하다. 다만 수원이 넉넉하지 않고, 또한 주인이 있는 땅이라 거저 얻을 수 없다고 하니 이것이 흠이다.
金礪輝言 此去不遠地 所謂寒岸村【한의아리】 前有築堰處 願往見之 朝後往見 則築堤把數可至二百五十餘把 而水淺易築 且不受風 其內甚闊 似容三十石之種 可謂難得之地 而但水根不優 且是有主之物 不可白得云 是可欠也
아! 나는 근래에 자못 전답과 집을 구하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남들이 혹 손가락질 하며 의아해하고 비웃지만, 명리를 분주히 좇는 사람들보다는 참으로 현명하지 않은가. 옛 사람들은 밭 갈고 낚시하고 소 기르고 화초 심고 도기 굽는 것에 스스로 의탁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지금 나는 거처와 논밭을 찾느라 흥취를 붙이는 것이 없다. 이번 한가로운 행차를 빌미로 따로 여유롭게 얻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비록 비웃고 의아해 하여도 족히 무슨 상관이겠는가.
嗟 我近來頗以求田問舍爲事 人或指點訝笑 而豈不賢於奔走名塗者耶 古人有以耕釣飯牛種苽陶冶自托者 今余索居田畝 無以寓興 借此閑行別有悠然自得者 人雖笑訝 何足關也
돌아오는 길에 김려휘인물의 집을 지나다 들렀다. 잠시 쉬어가라고 간절히 청하고서 점심을 대접하기에 부득이 잠깐 머물다가 돌아왔다.
歸路過金礪輝家 懇乞暫憩 仍供午飯 不得已暫留而歸
○백포(白浦)공간의 인편이 서울공간에서 돌아와, 아이들의 편지를 받았다. 두서(斗緖)인물의 딸인물이 혼인하였는데, 지난달 24일 혼례를 치렀고, 신랑은 진사(進士)개념 권세정(權世鼎)인물의 아들 권성언(權聖彦)인물이다. 나는 천리 밖에 있어 가서 볼 수가 없으니, 한탄스럽다.
○白浦便自京還 得兒輩書 斗緖女昏以前月卄四成禮 新郞卽權進士世鼎之子聖彦也 余在千里外 不得往見 可嘆
○지평(砥平)공간 이(李) 생원(生員)개념인물 댁 이모인물의 부음을 들었다. 통곡하고 또 통곡하였다. 살던 곳을 정리하여 서울공간로 옮겨 사신 지 여러 해이다. 재작년 내가 상경했을 때 여러 차례 안부를 여쭈었고[1] 기력이 강녕하시어 오래오래 사실 것이라 여겼는데, 갑자기 부음을 듣게 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친가와 외가의 어른들께서 이제는 거의 돌아가셨으니, 외롭고 괴로운 마음을 말로 다하겠는가. 2월 13일 그리 심하지 않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시니 향년 75세이다. 손자 태재(泰齊)인물가 복상을 대신하였다.
○聞 砥平李生員宅姨母訃 痛哭痛哭 捲寓洛下有年 再昨年余上京時數次承候 氣力康寧 謂享遐壽矣 豈料遽承凶音 內外尊行 今且殆盡 孤苦情事 可勝言哉 二月十三日以微恙別世 享年七十五 有孫泰齊代服喪
주석[ ]
- ↑ 1696년 6월 11일 일기 내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