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80230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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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2월 29일 戊寅년 乙卯월 乙亥일, 양력 1698-04-10 1698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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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2월 30일 을해
三十日 乙亥
맑음
함평공간의 일은 내가 작성한 중기(重記)개념를 보면 원래는 모자라는 곡식이 없었다. 지금의 현감 이언경(李彦經)인물의 보장(報狀)을 보니 신미년(1691) 가을에 거뒀어야 할 것 가운데 모자라는 물품가 278섬이고, 임신년(1692) 봄에 내준 것 가운데 모자라는 물품이 49섬 14말이라고 기록했고, 심방(沈枋)인물의 임신년 가을에 거뒀어야 할 것과 계유년(1693) 봄에 내준 것 가운데 모자란 물품, 물품, 물품이 모두 496섬이며, 이영한(李英漢)인물이 을해년(1695) 봄에 내준 것 가운데 모자라는 물품물품가 모두 223섬이라고 역시 기록되어 있다. 권성(權忄+省)인물에 대해서는 계유년(1693)과 갑술년(1694) 두해 모두 연조(年條)와 성명을 전혀 기록하지 않았다. 이언경인물권성인물을 벗어나게 해주려고 나를 비롯한 세 사람에게 터무니없이 죄를 덮어씌우려 한다지만, 어찌 아무 턱도 없이 사람을 모함하는 것이 이와 같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내 임기동안 결코 모자란 곡식이 없었다는 것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심방인물이 내가 저치미(儲置米)개념를 받지 못했다고 고발하여 심문을 받게 되었을 때, 만일 모자라는 곡식이 있었다면 반드시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의 여러 수령들도 잘못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고발한 것은 결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임기동안 모자란 곡식이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다.
咸事以吾重記觀之 則元無欠谷 以時倅李彦經報狀觀之 則辛未秋捧欠租二百七十八石零 壬申春分給欠米四十九石十四斗零懸錄 沈枋壬申秋捧癸酉春給欠米租太並四百九十六石零 李英漢乙亥春給欠太租並二百二十三石零 亦爲懸錄 而至於權忄+省 則癸甲兩年 年條及姓名全不擧論 彦經雖無狀欲脫權 而移罪於吾三人 何可以無爲有白地陷人如是哉 以此思之 則吾之必無欠谷 亦不可知也 然於沈枋發我儲置米未及捧者 使至於就吏之時 如有欠谷 必不少饒 厥後數官亦無執頉 而至於今日而現發 斷無其理 以此思之 則吾無欠谷 灼然無疑
여러 번 생각하다가 의아심이 없을 수 없어 다시 함평공간으로 사람을 보내 탐문하려고 하던 차에 어제 흥아(興兒)인물헌길(獻吉) 영감인물에게 보냈다.
反復思惟 不能無疑 方欲更問於咸邑之際 昨送興兒於獻吉令
김몽양인물의 말이 속히 상세하게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오늘 아침 다시 마당쇠(麻堂金)노비를 보내 정광윤(鄭光胤)인물, 김시량(金時亮)인물에게 상세하게 알아봐 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則其言亦曰 宜速詳問 故今朝又送麻堂金 抵書於鄭光胤金時亮 使之詳探回示矣
오늘 저녁에 김 영감인물이 일부러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무장현감인물의 편지를 보니 ‘전후 문안(文案)을 대략 살펴보니 윤 현감인물은 아무 죄가 없다고[白脫] 할 수 있고, 심방인물은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으나 내가 어찌 차마 심방인물으로 하여금 심문받게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반드시 조사하는 임무가 교체되기를 바라오.’라고 운운하였다.”라고 하였다.
今夕金令委致書曰 卽見茂倅書 略見前後文案 則尹倅可以白脫 而沈君直似不得免 吾何忍使沈就理 玆欲以必遞査任爲期 云云
그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겠으나 내 임기에 모자라는 곡식이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권성인물이 스스로 모면하려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운 것은 그럴 수 있으나, 이언경인물의 행위는 어찌 이상하지 않은가. 인심이 이와 같으니 장차 못하는 짓이 없을 것이다. 일의 한심한 것이 이와 같다.
故未知末終之果如何 而吾無欠谷則明矣 權忄+省之欲自脫而移罪他人 猶無足怪 而李彦經之所爲 豈不異哉 人心如此 則將無所不至 事之寒心有如是哉
극인(棘人)개념 김삼달(金三達)인물이 왔다.
○金棘三達來
제주(濟州)공간 교수(敎授)개념 송래백(宋來栢)인물이 역방했다.
濟州敎授宋來栢歷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