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0619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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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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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6월 18일 丁丑년 丁未월 丁卯일, 양력 1697-08-05 1697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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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6월 19일 정묘
十九日 丁卯
맑음
尹時相鄭光胤尹善衡尹爾服金淵來
곽이한(郭爾翰)인물이 왔다.
郭爾翰來
○지난날 종아(宗兒)인물가 정배되고 난 뒤에, 옥당(玉堂)개념에서 양사(兩司)개념가 명을 도로 거두어 달라고 청하지 않았다고 차자를 올린 사람은 조태채(趙泰采)인물였다. 명을 도로 거두어 달라는 계를 먼저 올린 사람은 정언개념 김치룡(金致龍)인물류중무(柳重茂)인물인데 치룡인물의 뜻이 유달리 강했다. 심지어 윤3월 초에 지평개념 김두남(金斗南)인물사헌부개념에 와서 정계를 하려고 하였으나 그것을 막은 사람도 치룡인물이었다. 그 후 치룡인물이 이런저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치룡인물이 우리 집안에 무슨 꺼리낌이 있어서 이렇게 구차한 말을 했는지 모를 일이니 그 역시 이상한 일이다. 당초 일을 시작한 사람을 말하자면 바로 판의금부사개념 이세화(李世華)인물다. 세 사람의 원정(原情)개념과 대질 심문에 조금도 트집을 잡을만한 단서가 없었는데도, 이세화인물가 다른 말로 문목(問目)을 만들어서 기어코 매흉(埋凶)에 동참했다고 몰아넣으려고 했다. 대신 및 공론이 모두 안 된다고 하자, 이세화인물가 “나에게 반드시 그들에게 죄를 줄 수 있는 문목을 만들라고 했다. 만약 원정대로 따르면 그들에게 반드시 죄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했다.”고 하였다. 이세백(李世白)인물이세화인물를 대신해 판의금부사개념가 되었으나, 문목은 이전 것을 따라 쓰니 영의정개념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꼭 고치게 하였다. 이세백인물이 하는 수 없이 문자를 약간 고쳤으나 대의는 같았다. 이세백인물이 다시 체차될 때까지 시종일관 강하게 쟁집하였다. 지사(知事)개념 신완(申琓)인물신여철(申汝哲)인물의 종질이라서 또 이세백인물을 좇아 힘을 보탰다. 아! 애통하다. 이 일의 전말을 논하자면 이세화인물이세백인물이 오직 칼자루를 쥐고 있었고, 김치룡인물 무리로 말하자면 끄나풀이니 비난할 것도 못되며, 숨어서 재앙의 실마리를 주관하고 있었던 사람은 바로 신여철인물이다. 나도 자세히 알지 못했고 세원(世願)이 집도 더욱 알만한 길이 없었으므로, 들은 것을 대략 기록하여 훗날 자손들이 살펴볼 자료로 삼고자 한다.
○向者宗兒旣定配之後 玉堂以兩司不請還收陳箚者 趙泰采也 還收之啓先發者正言金致龍柳重茂 而致龍之意獨峻 至於閏月初 持平金斗南 詣臺欲停 而阻之者 亦致龍也 厥後致龍多般發明云 未知致龍何憚於吾家而爲此苟且之言 其亦異哉 若言當初始事者 乃判金吾李世華也 三人原情及面質 少無可執之端 世華以別語作爲問目 必欲驅入於埋凶同謀之中 大臣及物議皆以爲非 則華曰使我必敎之問目 若循原情則非必敎之罪 故不得不爾云 李世白代華爲判金吾 而問目因前爲之 首揆大以爲非 使之必改 白不得已略改文字 而大意則同 及至再逮白也 終始猛執 知事申琓以汝哲之從姪 又從而力焉 噫噫痛哉 若論此事顚末 則華與白專執機柄 如致龍輩乃是贄從 不足數 而陰主禍機 乃申汝哲也 吾亦不能詳知 而世願輩尤無可知之路 故略記所聞 以爲日後兒孫輩考見之資 若言當初始事者 乃判金吾李世華也 三人原情及面質 少無可執之端 世華以別語作爲問目 必欲驅入於埋凶同謀之中 大臣及物議皆以爲非 則華曰 使我必敎之問目 若循原情則非必敎之罪 故不得不爾云 李世白代華爲判金吾 而問目因前爲之 首揆大以爲非 使之必改 白不得已略改文字 而大意則同 及至再逮白也 終始猛執 知事申琓以汝哲之從姪 又從而力焉 噫噫痛哉 若論此事顚末 則華與白專執機柄 如致龍輩乃是贄從 不足數 而陰主禍機 乃申汝哲也 吾亦不能詳知 而世願輩尤無可知之路 故略記所聞 以爲日後兒孫輩考見之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