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0323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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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3월 22일 丁丑년 甲辰월 甲戌일, 양력 1697-04-14 1697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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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3월 23일 갑술
二十三日 甲戌
저녁 무렵 비
向夕雨
녹산(彔山)공간의 역군(役軍)으로 강정점(江亭店)공간 20명, 하가치(下可峙)공간 4명, 하록산(下彔山)공간 2명, 상록산(上彔山)공간 1명, 죽천(竹川)공간 1명, 도합 28명이 와서 일했다. 날이 아직 저물기 전에 비가 오기에 일을 마치고 돌려보내면서 역군들에게 물품 2동이를 내줬다.
彔山軍人江亭店二十名 下可峙四名 下彔山二名 上彔山一名 竹川一名 凡二十八名赴役 日未暮而雨作 罷送 役酒二同海用下
○出身閔孝俊前別監朴敏規朴必文老人尹善用尹起磻尹亨周陳稶大同監官尹世昌朴座首元龜來
○일전에 낙안(樂安)공간이두광(李斗光)인물의 집을 지나면서 화단에 영산홍물품 한 그루가 있는 것을 보았다. 이두광인물이 말하기를, “안채 화단에도 두 떨기가 있는데 뿌리가 늙어 옮겨심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어린 나무를 새로 심은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나는 캐어오고 싶었으나 짐말에 실은 짐이 무거워 내려간 다음 심부름꾼을 보내 캐가겠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이두광인물이 말하기를, “심은 지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또 옮겨 심으면 필시 죽고 말 것이니, 캐가는 것은 어려울 듯합니다.” 라고 하였다. 나는 이두광인물의 말이, 고집스러운 척 보이려고 일부러 농담을 한 것이지 진짜로 아까워서 한 말이 아니라 여겼다. 이는 서로 좋게 지내는 사이에 으레 있는 경우로, 나 역시 농담으로 답해 주었다. 집에 돌아온 후 사람을 보내 간곡히 청했는데, 이두광인물은 단지 왜철쭉물품 한 그루만 주고 영산홍물품은 끝내 보내지 않았다. 처음에 만일 이두광인물이 이렇게까지 인색할 줄 알았더라면 어찌 며칠 거리에 일부러 심부름꾼을 보냈겠는가? 나는 본디 화초에 대한 벽(癖)이 없다. 그러나 영산홍물품은 구하기 어려운 이름난 꽃이라, 수백리길도 멀다 여기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농노(農奴)만 헛수고하게 만들고 나는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한탄스럽다. 이두광인물이 초목 하나를 아까워해 평소 서로 아끼던 정을 져버렸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나는 평소 티끌처럼 미미한 것도 일찍이 남에게서 구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두광인물은 우리 집안과 정의가 두터운데도 망령되이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 이런 무참한 꼴을 당한 것이다. 나는 남에 대해 본디 가볍게 믿어버리는 병이 있다. 한탄한들 무슨 수가 있겠는가?
○頃日過樂安李斗光家 見階上有映山紅一朶 李曰 內階又有兩叢 而根老難移 此則稚樹新種云 余欲斲來 而卜馬載重 期以下去後 委伻採去 則李曰 種未久而又移 則必致傷死 似難採去 余以爲李之言 故爲戱語佯示堅執 非眞惜也 乃是相好間例態 余亦以戱語答之 還家後 專人致懇 李只以倭躑躅一株塞責 映山紅 則終不送之 初若知李之慳嗇至於此 則何可爲數日程 專人以送之擧耶 余素無花草癖 而映山紅則乃難得之名花也 不遠數百里 虛勞農奴 余不能不作無益 誠可歎矣 李之惜一卉木 以負平日相愛之情 何暇言乎 余於平生 雖一芥之微 不曾求諸人 而李於吾家 情志相孚 妄有所干 見此無聊 余於人 素有輕信之病 雖歎奈何
극인개념 성덕기(成德基)인물가 역방하여 만났다. 영광공간성수귀(成壽龜)인물성(成) <Term id="M088" name="극인">극인인물</Person>과 함께 들렀다.
○成棘德基歷見 靈光成壽龜與成棘偕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