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0127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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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1월 26일 丁丑년 壬寅월 己卯일, 양력 1697-02-18 1697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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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1월 27일 기묘
二十七日 己卯
눈이 몇 차례 어지러이 날려 쌓임. 간간이 약한 햇빛이 남
亂雪陣陣頹積 微陽時時透照
임취구(林就矩)인물최상일(崔尙馹)인물이 왔다.
林就矩崔尙馹來
영광공간이휴(李茠)인물이후식(李厚植)인물추노(推奴)개념하는 일로 해남공간에 왔다가 눈이 와서 집에 들어와서 점심을 청하여 먹고 갔다.
靈光李茠李厚植有推奴事於海南 遇雪而入覓喫點心而去
일백(一白)노비거제도공간에서 돌아왔다. 종아(宗兒)인물가 8일에 유배지에 도착하여 현의 서쪽 둔덕촌(屯德村)공간에 임시로 거처하는데 일단 큰 병은 없다 하니 약간 위로가 되었다.
○一白自巨濟還 宗兒初八到配 寓居縣之西屯德村 姑無巨恙 稍可慰也
해남공간의 하리(下吏) 유성언(兪聖言)인물고목(告目)개념과 함께 관문(關文)개념을 보내왔다. 함경도에서 납속(納粟)개념하여 진휼을 도운 자 900여 명을 조정에서 모두 면천해주고 노비의 주인은 진휼청개념에서 그 값을 받게 하였는데, 그 가운데 삼수(三水)공간의 비(婢) 만월(萬月)노비, 노(奴) 만장(萬長)노비, 만기(萬己)노비, 순선(順善)노비의 주인 이름이 해남(海南)공간의 전(前) 참의(參議)개념 윤(尹) 아무개인물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을묘년의 화회문기개념를 살펴보니 각 댁의 몫으로 받은 명단에 없었다. 삼수공간는 워낙 멀어서 노(奴)를 보내서 신공(身貢)개념을 받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고 노비의 소생도 알 수가 없다. 이른바 만월노비 등은 부모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문기(文記)에 만월노비 등의 이름이 없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부득이 이러한 내용으로 고목개념에 회제(回題)[1]하도록 하여 보냈다.
○海南下吏兪聖言告目且送關文 咸鏡道納粟補賑者九百餘人 朝家皆爲免賤 使各其奴婢主受價錢於賑廳 其中三水婢萬月奴萬長萬己順善主名 以海南前參議尹某顯錄故也 憑考乙卯和會文記 各宅衿中無是名 三水道里絶遠 不能送差奴收貢已多年 奴 婢所生無以知之 而所謂萬月等 不書父母之名 文記中無萬月等之名 無足怪也 不得已以此意回題告目以送

























주석[ ]

  1. 회제(回題): 고목의 보고에 대한 처분을 한쪽에 써서 회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