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60618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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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6월 17일 丙子년 乙未월 壬寅일, 양력 1696-07-16 1696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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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6월 18일 임인
十八日 壬寅
흐리다가 맑음
陰陽
밤에 냇물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아침이 되자 냇물의 기세가 조금 줄어들었다. 지체하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 조반을 먹은 후 출발했다. 앞 내를 건널 수 없어 냇물 서쪽으로 길을 잡았는데, 산록이 험하여 지치고 병든 말이 가기 힘들었다.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거꾸러지는 광경을 말하기 어렵다. 앞 내를 건너기 어렵고, 게다가 일신교(日新橋)공간가 무너져 도로도 끊어졌다. 고만진(高巒津)공간으로 가서 물품로 건너려고 10여리를 어렵게 가서 거의 고만진에 닿았는데, 들으니 나룻배물품가 물에 떠내려가서 행인도 건널 수 없다 한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발길을 돌려 길을 찾았다. 대개 궁원(弓院)공간 앞 내가 필시 이미 물이 빠졌을 것이므로 그곳으로 건너고자 수다전촌(水多田村)공간을 경유하고 갔다.
夜聽水聲如電 朝來漲勢稍減 不堪滯坐 朝飯後發 前川不可越 取路水西 山麓嶮阻 難行玄黃 七顚八倒 景狀難言 盖非徒前川難越 日新橋崩 道路斷絶 欲從高巒津舟渡 而艱關十餘里 幾及高巒津 聞津船爲水漂去 行人亦不通 不得已回 尋來路 盖弓院前川 必已向縮 欲從此而渡 由水多田村以去也
이렇게 돌고 있는 사이에 날은 이미 정오가 넘어 인마(人馬)가 주리고 배고파하기에 길 옆 마을에 당도하여 물품을 먹였다. 그 이름이 금암촌(黔岩村)공간이라 하는데, 문득 길에서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던 첨사개념 이세용(李世容)인물을 만났다. 또 한 객을 만났는데, 고만진(高巒津)공간에 갔다가 배가 없어서 오는 길이었다. 잠시 후에 또 한 객을 만났는데, 역시 고만진(高巒津)공간에서 돌아오는 이였다. 모두 궁원(弓院)공간 앞 너른 들의 천변까지 왔더니 물살이 다소 줄어 있었다. 사람을 시켜 물을 건너보게 했는데, 그 깊이가 가슴을 넘었다. 싣고 있는 짐을 풀어 노(奴)들이 머리에 이고 건넜다. 나와 아이는 옷을 벗고 맨발로 건너 (…) 물살이 완만하고 빠르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았다. 이세용인물과 객 두 명도 무사히 (…)
如是周回之際 日已過午 人馬飢乏 到路傍村秣馬 其名曰黔岩村云 忽於路上 逢李僉使世容自京歸鄕 又逢一客 到高巒無船而來 俄又逢一客 亦自高巒而回 齊到弓院前場坪川邊 水勢頗減 使人試水 則其深過乳 解所載 奴輩頭戴而濟 吾與兒脫衣跣足跨■…■水勢緩而不駛 故不甚危 李及二客亦無■…■到
소위 수다전촌(水多田村)공간이다. 마을 안에 큰 기와집이 있기에 투숙하러 갔더니, 주인은 우덕진(禹德進)인물으로 무학(武學)개념에서 나이가 많아 역을 면제 받은 자이다. 사람됨이 무식하고 완고하며 그 처는 몹시 시끄러웠다. 집은 좋으나 사람은 좋지 않다고 이를 수 있겠다.
所謂水多田村 村中有大瓦家 投接則主人禹德進武學老除者也 爲人冥頑 其妻多聒 可謂屋好而人不好也
두 객은 물가에서 모두 이별을 고하고 헤어졌다. 이세용인물은 나와 함께 도착하여 이웃 교생(校生)개념 박세휘(朴世輝)인물의 집으로 와서 머물렀다. 나는 우덕진(禹德進)인물이 싫어서 나가서 이세용인물과 함께 잤다. 아침부터 저물 때까지 30여리를 두루 돌아다니다 끝내 온 데가 여기라니, 도리어 가소롭다.
二客水邊皆告別而散 李武偕余而到 接于隣舍校生朴世輝家 余苦禹漢 就與李武同宿 自朝至暮周行三十餘里 而終歸于此 還可笑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