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60312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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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3월 11일 丙子년 壬辰월 戊辰일, 양력 1696-04-13 1696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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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3월 12일 무진
十二日 戊辰
흐렸다 맑음
陰陽
나주공간김필상(金弼商)인물이 왔다.
羅州金弼商來
연동공간윤기미(尹器美)인물가 왔다.
蓮洞尹器美來
<entry id="N1696031203">○진도공간정(鄭) 대감인물이 보낸 편지와 〈죽도서기(竹島序記)〉를 받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평 윤재경(尹載卿)인물고산(孤山) 노선생(老先生)인물의 손자이다. 어릴 때부터 집안의 가르침을 몸에 익혀 그 행실과 품은 뜻에는 사람들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많지만 남들은 잘 알지 못한다. 중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조정에 출사하였으나 세인들이 추구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이 때문에 세인들 역시 좋은 자리로 올려주고 끌어주는 자가 없었다. 함평현감을 지내다가 관복을 벗고 영암 팔마촌(八馬村)공간 농사(農舍)로 돌아와 살다가 얼마 후 화산(花山) 죽도공간 바닷가에 별천지를 얻었다. 섬에 대나무가 많아서 현지인들이 섬 이름을 죽도라고 부른 것이다. 후한 값으로 사서 대숲을 트고 초당 세 칸을 지으니 끝없이 너른 바다에 바람과 파도가 일고 원근의 섬들이 모두 주렴 밖에 놓여 있어, 속세의 시끄러움이 이르지 못했다. (…)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을 얻은 공적이거나 사적인 누대(樓臺), 정사(亭榭)들도 모두 여기에 미치지는 못한다. 재경은 명문가 사람으로서 순수하고 빈틈없는 행실이 있고, 비록 벼슬자리에서의 명성과 공적이 당대에 크게 드러나지는 못했지만, 줄지은 다섯 아들에 여러 손자들이 앞을 가득 매우고 나이 예순을 넘어서도 건강은 젊을 때 못지않으며,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家業)이 본디 넉넉하여 집안에 양식이 끊이지 않으며, 이 같은 빼어난 땅을 얻어 강과 바닷가에서 여유롭게 노니니, 세간에서 말하는 청복(淸福)을 재경은 모두 가진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칭송하면서도 부럽게 만든다. 하지만 조물주는 장난을 좋아하여 왕왕 허깨비 같은 관작을 가지고 사람을 속세의 험지로 몰아가니, 모르겠네, 재경이 능히 조물주의 장난을 벗어나 고고히 초당(草堂)에 누워 끝까지 죽도의 주인으로 남을 수 있을지. 함평 윤재경이 죽도에 초당을 짓고 내게 절구(絕句)를 보여주기에 내가 화운(和韻)하여 그 집 벽에 걸 글씨를 보내주었는데, 지금 또 매우 간절히 초당기(草堂記)를 얻고자 하므로 결국 몇 줄 써서 부탁에 응한다.
병자년(1696) 중춘(仲春, 2월) 정 길보(鄭吉甫)인물

</entry>
○得珍島鄭台書及竹島序記曰

尹咸平載卿 孤山老先生之孫也 自少服習庭訓 其飭行勵志 多有人不可及者 而人或不知焉 中年登制科仕於朝 而不屑屑於世之所趨 故世亦無吹噓援引之者 自咸平解其紱 歸靈岩八馬村農舍而居之 仍得海上別區於花山之竹島 島多竹 故土人以竹名其島 購以厚價 披竹林 搆草堂三間 萬頃風濤 遠近島嶼 皆在簷簾之外 而塵喧不到■■■■沿海 公私樓臺亭榭之以勝觀見稱者 皆莫及焉 載卿以名家之人 有純備之行 雖官位聲積未大顯耀於時 五子成行 諸孫滿前 年踰六十 康健勝於少壯時 世業素饒 家食不匱 而得此勝地 優游江海上 世間所謂淸福 載卿皆有之矣 使人可賀而可羨也 然造物多戱劇往往 以蒭狗軒冕 驅人於世路之崎嶇 吾未知載卿能免造物之所戱 得以高臥草堂而終爲竹島主人否也 尹咸平載卿 搆草堂於竹島 以絕句示余 余旣和其韻寄題其堂壁 今又求草堂記甚懇 遂書數行 以副其求 丙子仲春 鄭吉甫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