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50224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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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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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5년 2월 23일 乙亥년 己卯월 丙辰일, 양력 1695-04-07 1695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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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5년 2월 24일 병진
二十四日 丙辰
맑음
尹文道尹千齡尹以周尹載道尹希卨希益來
인천공간으로 갔던 인편이 돌아와 조카들의 편지를 받았다. 2월 10일에 장례를 무사히 치렀다고 하니, 비통함이 더욱 절절하다.
○仁川便還 見姪輩書 初十安過葬事 悲痛益切
들으니, 자형(姊兄)인물[1]이 병이 위독할 때 자신의 만사(挽辭)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고 한다.

천년 지나 화표(華表)로 돌아가 깃든 학
,구만리 하늘길에도 헤매지 않았네.
당시의 술통 바닥을 비추던 달만이,
맑은 가을 일당(逸堂)의 서편을 비추고 있네.

[2]
만사의 뜻이 처량하여 평소 짓던 것과 달라, 읊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글재주가 풍성하고 넉넉했어도 결국 명성을 이루지 못했으니, 재주는 있으나 좋은 운명은 없음이 이와 같은가! 애통하고 애통하다.
聞姊兄病篤時 作自挽曰

千年華表鶴歸栖
九萬雲霄路不迷
只有當時樽底月
淸秋虛照逸堂西

句意凄切 不似平日所作 吟來不覺淚下 文詞富贍而終未成名 有才無命有如是哉 痛矣痛矣

























주석[ ]

  1. 윤의미(尹義美, 윤이후의 생부)의 딸과 혼인한 안서익(安瑞翼). 1694년 11월 26일에 사망했다는 내용이 1694년 12월 10일 일기에 나옴.
  2. 이 시는, 한(漢) 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인 정령위(丁令威)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술을 배우고 학이 되어 요동으로 돌아와 화표주(華表柱: 건물이나 성곽에 세우던 화려하게 장식한 큰 기둥) 위에 앉아 있었는데, 한 소년이 활을 들어 쏘려 하자 그 학이 날아올라 공중을 배회하며, “새가 된 정령위, 집 떠난 지 천년 만에 돌아왔네. 성곽은 의구한데 사람은 아니구나! 어이하여 신선을 배우지 않아 무덤만이 즐비한가!(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冢纍纍)”라고 하였다는 《수신기(搜神記)》의 고사를 인용하여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