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50116

jiamdiary
이동: 둘러보기, 검색


1695116
← 이전 다음 →
1695년 1월 15일 乙亥년 戊寅월 戊寅일, 양력 1695-02-28 1695년 1월 17일


태그숨기기


원문이미지보기


1695년 1월 16일 무인
十六日 戊寅
약간 맑으나 바람은 그치지 않음
微陽而風不止
흥아(興兒)인물고금도공간로 출발했다. 그곳에서 발길을 돌려 신지도공간로 갈 계획이다. 목(睦) 상(相)인물이(李) <Term id="M016" name="감사">감사(監司)인물</Person>가 유배되고 해가 바뀌었지만, 흥아인물는 제 모친인물이 병중에 있고 또 눈과 추위를 꺼려해서 아직 한 번도 문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이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Term id="M220" name="별장">별장(別將)인물</Person>과 교포(橋浦)공간에서 만나기로 하여 동행하기로 했다.
興兒發古今島之行 以爲轉往智島之計 蓋睦相李監司謫居歲換 而兒以母病且畏雪寒 尙未一候 故今作此行 與別將期會於橋浦 以爲同行之地
윤징귀(尹徵龜)인물, 윤승후(尹承厚)인물, 윤장(尹璋)인물이 왔다.
○尹徵龜尹承厚尹璋來
지난번에 들으니, 윤장인물서울공간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심(沈) 대감인물<Term id="M666" name="학관">학관(學官)인물</Person>이 내가 파산(波山)공간에 있는 선조 표석(標石)의 글을 짓고 썼다는 것을 듣고, 상중에 있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며 크게 비난하고 꾸짖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미 비방했던 일을 가지고 또 크게 떠벌린 것이다. 오늘 윤장인물과 안부를 주고받은 후 내가 “심 대감인물이 내가 상중인데도 <Term name="갈문">갈문(碣文)</Term>을 쓴 것을 옳지 않다고 했다고 하는데, 그가 무슨 말을 하던가?” 라고 물었다. 윤장인물이 머리를 떨구고 혼자 말로 “<Term name="갈문">갈문(碣文)</Term>을 쓴 일이라, <Term name="갈문">갈문</Term>을 쓴 일이라.”하고 중얼거리더니, 짐짓 모르는 척 하며 우물대다가 한참 후에 말하기를, “기억하지 못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내가 “그대는 남에게 말할 때는 자세히 해놓고 어째서 내 앞에서는 잊었다고 하는 것인가?”라고 하자, 윤장인물이 하는 수 없이 억지로 답했다. “별다른 말씀은 없었습니다. 심 대감인물<Term id="M666" name="학관">학관인물</Person>이 단지 ‘평상시 예와 다르니(평소와는 다른 상황이거늘) 어찌 이를 했는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때 문중의 의론이 모두 ‘이것은 조상을 위하는 일에 관계되는 것이니 비록 상중에 있더라도 못할 것이 없다’며 매우 극진하게 권하였고 나 또한 ‘사람이 혹 상을 당하여 위패 쓸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상인(喪人)개념이 직접 쓰는 자가 있더라도 그만두게 할 수 없는 것이니 한때의 임시방편이라도 행하지 않을 수 없다.’ 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의리는 일찍이 부모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때 들었는데, 지금 비록 근심 중에 있으나 (…) 경중에 차이가 있으므로 힘써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일에 그 실상을 묻어버리고 (…) 꾸며서 옮긴다면 듣는 이가 미혹되는 것도 족히 괴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심 대감인물이 다른 사람의 말을 범범하게 듣고 그르다고 하는 것이 무슨 허물이겠는가?”라고 했다. 그러자 윤장인물이 말하기를, “어른의 일을 제가 어찌 감히 심 대감인물에게 고하겠습니까? 마침 심 대감인물이 들은 바가 있어 묻기에 숨길 수 없어 그 대략만을 간략히 말했을 뿐입니다” 라고 했다. 내가 말했다. “문중에서 일제히 함께 한 일이니 몰래 숨겨서 알기 어렵게 한 일에 비길 바가 아니다. 또한 숨길 일이 아닌데, 내 어찌 그대가 숨기지 않으려한 마음을 꾸짖겠는가? 심 대감인물<Term id="M666" name="학관">학관인물</Person>의 말이 옳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곡절을 상세히 살필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갑작스레 비난하고 배척한 것이 한탄스럽지만, 이 또한 심 대감인물<Term id="M666" name="학관">학관인물</Person>의 허물이 아니고, 말을 전한 자가 함정에 빠뜨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말을 전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분명 무심하게 나온 행동이 아닐 것이다. 설령 내가 잘못한 바가 있어서, 그가 친척 간에 서로 사랑하는 도(道)를 갖고 그리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묻기 전에 먼저 말하는 것이 옳다. 지금 어째서 다른 사람에게 소문을 퍼뜨리고서 내게는 굳이 숨기려는 것인가? 내가 이미 듣고 물었으면, 그대는 마땅히 들은 것을 다 말하여 정의(情意)를 보여주는 것이 옳은데, 이를 하지 않고 오직 숨기기에 여념이 없다. 그대가 나를 매우 돈독히 여기지 않으니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무릇 언어는 내 입에서 이미 나오면 반드시 다른 사람 귀로 들어가는 법이다. 그대가 이미 말을 전하고도 ‘내가 무엇을 알겠습니까?’라며 끝내 실토하지 않으니, 어찌 그리 명민하지 못한가. 그대가 나를 따돌리는 것도 족히 책망할 것이 못되니, 스스로 계획한 것이 허술하구나.” 라고 하자, 윤장인물이 무안해 하며 돌아갔다. 이로써 미루어보면 윤장인물이 한 바임을 확실히 알 수 있으나, 또한 반드시 주장한 사람이 있을 것이니 한탄스러움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頃聞璋自京還言 沈台學官聞吾製寫波山標石 以爲衰絰之人不當爲者 大加非斥 蓋有旣訐而又唱之者也 今日與璋寒喧之後 余問沈台以余乘喪書碣爲非云 其措語如何 璋垂頭而私自潛語曰書碣事書碣事 陽爲不知之狀 囁嚅良久乃曰 不能記憶云 余曰 君何語人則詳 而對我則忘乎 璋不得已强答之曰 無他措語 沈台學官但曰異於常時 何乃爲之云矣 余曰其時門議 皆以爲此乃爲先事 雖在草土 固無所妨 勸之甚篤 余亦思之 人或當喪而不得題主之人 則喪人有自爲之者 在所不已 則一時權變不可不行 此義嘗聞於趨庭之際 今雖在憂戚之▢…▢輕重有間焉 故不得不勉從耳 凡事沒其實而▢▢粧註 則聽者之惑無足怪矣 沈台之泛聽人言而以爲非者 何尤焉 璋曰長者之事 吾何敢告達於沈台乎 適沈台有聞而問之 故不得隱諱畧陳其槩耳 余曰 門中齊作之擧 非幽暗難知之比 且非隱諱之事 吾豈有責君不諱之心乎 沈台學官之言不爲不是 而但不能詳究曲折 猝加非斥可嘆 而此亦非沈台學官之咎也 乃傳者夤好欲陷之故也 吾未知傳者何人 而必非無心之發也 設令吾爲所失 其在親戚相愛之道 不待我問而先言之可也 今何播說於人 而牢諱於我乎 吾旣有聞而問之 則君當悉陳所聞 以示情意可也 而不此之爲 惟諱之不暇 君之不厚甚矣 竊不取也 且凡言語旣發於吾口 則必入於人耳矣 君旣傳說而謂吾何知 終不吐實 何其不明也 君之外我不足責也 而自爲計者疎矣 璋憮然而去 以此推之 則璋之所爲的然可知 而亦必有主張者存矣 可勝歎哉
진사개념 한종석(韓宗奭)인물우계(牛溪)인물율곡(栗谷)인물을 다시 제향하는 것을 논척한 상소의 소두(疏頭)개념였기 때문에 강진공간으로 유배되어 병영(兵營)공간에 머무르게 되었다. 조문 편지를 써서 나를 위문하였기에 즉시 답장을 썼다.
○韓進士宗奭以牛栗復享斥疏頭謫配康津居兵營 修弔疏以問 卽答謝
【병자년(1695년) 여름에 내가 서울공간에 당도했을 때 윤장인물의 이야기를 했더니 심(沈) 대감인물이 말하기를, “장(璋)인물과는 원래 문답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 집도 또한 상(喪) 중에 묘갈명 같은 것을 짓고 쓰는 일이 있었으니, 형께서 한 일이 어찌 미안한 일이겠습니까. 장(璋)인물이 헛소리를 전한 것이 놀랍습니다.”라고 했다. <Term id="M666" name="학관">학관인물</Person> 또한 매우 놀라워했으니, 그렇다면 인물의 일은 또한 이상하지 않은가? 】 [1]
【丙子夏余到京時言尹璋之語 則沈台曰 璋元無問答之事 吾家亦有乘喪製寫之事 兄主所爲 豈有未安之事乎 璋之虛傳可駭云云 學官亦甚駭然 然則璋之事 不亦異哉】
























주석[ ]

  1. 이상의 글은 병자년 여름에 서울에 가서 사실 확인을 한 후 추가로 기술한 부분이다. 여백이 없어 작은 글씨로 추기(追記)해 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