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31227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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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년 12월 26일 癸酉년 乙丑월 丙申일, 양력 1694-01-22 1693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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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년 12월 27일 을미(병신)
二十七日 乙未
맑음
전부댁(典簿宅)의 노(奴)노비서울공간에서 돌아와 아이들의 잘 있다는 편지를 받았다.
典簿宅奴自京還見兒輩平書
최 숙원(崔淑婉, 淑媛)인물[1]가 경풍(驚風)으로 13일에 죽었다고 한다.
聞崔淑婉出新生王子以驚風十三日不救
○관학(館學)의 노비추쇄관(奴婢推刷官)개념원치도(元致道)인물가 들러 방문했다.
○館學奴婢推刷官元致道歷訪
강진(康津)공간에 사는 박융식(朴隆植)인물이 그의 노비를 팔고자 왔기에 만났다.
○康津居朴隆植欲賣其奴婢來見
정광윤(鄭光胤)인물윤시삼(尹時三)인물이 왔다.
鄭光胤尹時三來
참의개념 민안도(閔安道)인물가 이달 17일에 세상을 떠나고, 별제(別提)개념 권박(權璞)인물 또한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
○閔參議安道今月十七長逝 權別提璞亦奄忽云
○지난번에 임금인물께서 비망기(備忘記)개념를 내려 진덕수(眞德秀)인물를 종향(從享)하라고 특별히 명하시고, “사문(斯文)에 큰 공이 있으니 태산북두를 보듯 우러러 보네. 어찌 유림(儒林)에서만 높일 것인가, 마땅히 조두(俎豆)를 올려야하리.”라고 시를 지었으나 이미 배식(配食)을 하고 있어서 그만두었다.인용 오류: <ref> 태그를 닫는 </ref> 태그가 없습니다
○頃日上下備忘記特命眞德秀從享 仍製詩曰 斯文存大功 仰止若山斗 奚但儒林尊 是宜享俎豆云云 而已爲配食故止























주석[ ]

  1. 본문에는 ‘淑婉’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淑媛’의 잘못이다. 숙원은 왕의 후궁에게 내리는 종4품의 위호(位號)이다. 최 숙원은 영조의 생모로서, 나중에 숙빈(淑嬪)의 지위까지 오른다.이 새로 낳은 왕자(王子) 숙원 최씨가 낳은 첫째 아들 영수(永壽). 10월 6일에 태어났으나 2달 만에 사망했다. 영조는 숙원 최씨의 둘째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