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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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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9월 2일 戊寅년 壬戌월 甲戌일, 양력 1698-10-06 1698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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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9월 3일 갑술
三日 甲戌
맑음
아침 후에 흥아(興兒)를 데리고 귀날리공간 문장(門長) 댁공간으로 가서, 족숙(族叔) 윤정미(尹鼎美)인물이홍임(李弘任)인물, 남궁량(南宮{玉+亮})인물과 함께 합장암(合掌庵)공간을 구경하러 나섰으니, 합장암은 소석문(小石門)공간 바윗돌 사이에 있다. 석문천(石門川)공간가에 도착하여 천변으로부터 곧장 올라가니, 길이 매우 가파르고 험준했다. 암자 아래에 도착하니 바위가 우뚝우뚝 서 있어 석벽을 따라 붙잡고 올라갔더니, 두 바위 봉우리가 뿔처럼 서 있고 나무 하나를 가로질러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다리를 건너니 곧 암자였다. 암자공간는 한 칸으로 8자(尺)[1]였다. 암자 뒤의 큰 바위는 중간이 쪼개져 마치 두 손이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이었고, 두 손 사이는 깊은 굴을 이루고 있었다. 굴 안쪽에서 샘이 솟아 나오는데, 대나무를 갈라 암자 곁으로 물을 끌어들였다. 암자 앞 좌우에는 바위 봉우리가 우뚝 서 있다. 암자 앞에는 박달나무물품 한 그루가 노쇠하여 그늘을 이루었고, 뒤에는 커다란 동백나무물품 한 그루가 바로 굴 입구에 있었다. 암자 앞 왼쪽 바위 봉우리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 바위 모퉁이로 옮겨 가 앉으니, 백도(白道)공간 앞바다가 모두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는 대석문(大石門)공간소석문(小石門)공간이 있는데, 그 모습이 창과 칼을 묶어 세운 것 같고, 우뚝우뚝하고 기기묘묘한 모습을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다. 두 곳 모두 중간이 트여서 그 사이를 내가 흐르는데, 이른바 ‘대석문’ 쪽은 바위 봉우리와 냇물이 크고, ‘소석문’ 쪽은 봉우리와 내가 약간 작다. ‘대’와 ‘소’란 명칭이 붙은 것이 이 때문인데, 그 깎아지른 바위가 기괴한 것은 같다. 가히 호남 제일의 명승지라 할 만하다. 옛날부터 암자가 있었지만, 벽곡(辟穀)개념하는 도가가 아니면 머무를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수호하는 이가 없어, 퇴락하여 볼만한 것이 없었다.
朝後率興兒往貴出里門長宅 與尹族叔鼎美及李弘任南宮{玉+亮} 往觀合掌庵 庵在小石門巖石間 到石門川邊 自川邊直上 路甚峻急 旣到庵下 石角矗立 攀緣石壁而上 則兩石峰角立 以一隻木橫截作橋 渡橋卽庵 庵制一間八隻 庵後大巖 中折若兩掌相合之狀 兩掌之間卽成深窟 窟之奧有泉湧出 剖竹引水于庵之傍 庵前左右石峯特立 庵之前有生檀木一株老大成陰 庵之後有冬栢一大株 卽窟之口也 庵前左石峯遮却眼界 移坐石角 則白道前洋 皆在眼底 此地有大小石門 其狀如槍劍束立 矗矗奇奇不可狀言 兩處皆中開 有川流其間 所謂大石門 石峰及川水大 小石門 石峰及川頗小 小大之得名以此 而其巉巖奇怪則一也 可爲湖南之第一勝觀 古有庵子 而若非絶穀道類 不可以居 以此無守護 頹廢無可觀
지금 관찰사개념유득일(兪得一)인물이 감영(監營)에 있을 때 강진의 하리(下吏)에게 말하기를, “내가 순시할 때 합장암을 구경해야겠으니, 깨끗이 손보고 청소하여 기다리라.”고 하였다. 강진현감인물이 그 말을 듣고 수리하겠다고 보고하면서 송첩(松帖)물품과 일꾼들의 식량을 청하고는 무익한 일을 벌여 유익함을 해친다[2]는 뜻으로 말하였다. 관찰사인물가 이 말을 듣고 노하여 책망했는데, 당초 했던 말의 본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에 화를 낸 것이다. 그런데 강진현감 송만(宋滿)인물이 또 사직계를 제출하자 관찰사인물가 더욱 노했다. 강진공간 향소(鄕所)의 하인들이 크게 겁을 내면서 근처 보암면(寶巖面)공간[3]의 통미(統米)를 취하여 통마다 물품 7말, 물품 2근을 내도록 하고, 정수사(淨水寺)공간, 수정사(水淨寺)공간, 만덕사(萬德寺)공간 세 절의 중들을 차출하여 일을 시켜 일시에 중창하니, 새로 한 단청이 바윗돌 사이에서 휘황찬란하였다. 그 비용과 노력이 적지 않았음은 지금 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며칠 전에 관찰사개념강진공간에 와 이 암자 아래까지 이르렀다가, 나무 잔도에 겁을 먹고 도로 내려가서, 강진의 하리를 잡아다가 이런 흉년에 백성을 힘들게 하고 재물을 낭비했다고 책망했는데, 하리들이 대답하기를, 소비한 것이 7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관찰사가 즉시 그만두었다. 아아! 관찰사의 처음 의도는 단지 조금 손보고 청소하라는 것일 뿐이었는데, 강진읍에서 겁을 집어먹고 이렇게 많은 재물과 인력을 소비했다.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렀으니 여기까지 와서 눈으로 보았다면 당연히 책임을 물었을 텐데, 하리들의 거짓된 보고만 믿고 내버려두고 책임을 묻지 않았으니, 진실로 개탄스럽다. 관찰사인물는 처음에는 정사에 엄격함과 분명함이 있다는 명성을 꽤 얻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하는 일마다 모두 흐리멍덩하여 백성들의 신망을 크게 잃었으니, 매우 가소롭다. 합장암공간이 새롭게 중창되었지만 관찰사는 한 번도 와서 보지 않았고, 단지 한가한 사람들의 유람처가 되었을 뿐이니, 역시 가소롭다.
今方伯兪得一在營時 言于康津下吏曰 吾於巡歷 當觀合掌庵 可修掃以待 康津倅聞其言 具報修理之意 請得松帖役粮 且言作無益害有益之意 方伯怒責之 蓋怒其初言之不解本意 而康倅宋滿又呈辭狀 方伯益怒之 康邑鄕所下人大怯之 收取近面寶巖統米 每統各米七斗 鐵二斤 且出淨水水淨萬德三寺僧徒而役之 一時重創 仍新丹雘照耀於巖石 其費力之不貲 入目可知 數日前方伯到此 至庵下 怯於木棧 還爲下去 捉入康吏 責以當此凶歲勞民傷財之由 吏對以所費不過七斗之米 方伯卽捨之 噫 方伯初意只令修掃而已 而康邑惶怯 費盡許多財力 至於如此 則到此目睹之後 當有致責之道 而信聽下吏之誣告 置而不問 良可慨也 方伯初政頗得嚴明之名 而今此一行事皆矇矓 大失民望 可笑可笑 庵旣重新 不經方伯之一覽 只爲閑人遊賞之地 亦可笑也
우리들은 여기 오면서 피리물품 부는 동자와 거문고물품 타는 아이를 데리고 왔다. 잠시 동안 연주하고 노래하니 바위 골짜기에 메아리가 울려 마치 세상 밖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날이 어둑해져 귀갓길을 재촉하기에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
吾輩之行 帶得笛童琴兒 半餉吟彈 巖谷響應 依然若出世之人 而暝色催歸 不得久留
저물녘에 문장(門長) 댁공간에 돌아와 유숙했다.
冒昏歸宿門長宅
함평(咸平)공간의 사인(士人) 윤찬(尹燦)인물이 왔다. 김시량(金時亮)인물, 윤원경(尹元卿)인물, 윤상필(尹商弼)인물의 편지를 가져오고 소록(小錄)을 전해주었다. 소록은 고창현감인물이 다시 조사한 문서였다. 나는 본래 축낸 곡식이 없었는데, 일찍이 탕척(蕩滌)이 시행되지 않고 남모르게 누락되었던 것을 조사관이 집어내어서는 드러내 아뢰었다. 이것은 앞사람들로부터 내려온 누락이고 또한 문서도 없었기에 중간에 부임한 수령은 이를 알아챌 수가 없으니, 내가 혼자서 감당할 일이 아니라 부임했던 수령들 모두가 책임이 있다. 장차 책임을 물어 도로 바치게 한다 해도 역시 공공연히 곡식을 축낸 경우와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가지고 관찰사개념에게 낱낱이 보고하니, 조사관의 짓거리가 몹시도 해괴하다. 이 일을 관찰사인물가 임금에게 아뢰지 않았다고 하는데 관찰사가 하는 짓도 역시 알 수가 없다. 매우 걱정스럽지만 어쩌겠는가.
○咸平士人尹燦來 仍持金時亮尹元卿尹商弼書與小錄以傳 小錄卽高敞更査文書也 吾則本無無面之谷 而査官拈出曾前蕩滌未行隱然落漏者而現告 此乃流來落漏且無文書 故中間守令無以覺察 非吾之獨當 皆有置處 將爲還捧 亦非公然無面之比 而以此枚報 査官之所爲 極涉怪駭 此非方伯之入於啓聞者 而方伯之所爲 亦未可知 殊慮奈何
























주석[ ]

  1. 8자(尺) : 원문에는 ‘尺’가 ‘隻’으로 되어 있으나, 오기(誤記)일 것으로 짐작된다. 1간(間)은 대략 6 척(尺)이다.
  2. 무익한 일을 벌여 유익함을 해친다 : 『서경(書經)』「려오(旅獒)」에 “무익한 일을 하여 유익한 일을 해치지 않으면 공이 이루어진다(不作無益 害有益 功乃成)”라는 말이 나온다.
  3. 보암면(寶巖面) : 현재의 도암면(道巖面) 지역. 도암면은 예전의 파지대면(波之大面), 보암면, 백도면(白道面)이 합쳐져 이루어진 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