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80504"의 두 판 사이의 차이
jiamdiary
(import) |
(import) |
||
11번째 줄: | 11번째 줄: | ||
|양력=1698-06-11 | |양력=1698-06-11 | ||
}} | }} | ||
− | {{DivboxDiary}} | + | {{DivboxDiary|{{ButtonToggleTag}}|{{ButtonLoadPdf|pdfmark=jiamdiary169805.pdf}}}} |
{{LayoutDiary | {{LayoutDiary | ||
2020년 2월 3일 (월) 10:40 기준 최신판
1698년 5월 4일 | ||
← 이전 | 다음 → | |
1698년 5월 3일 | 戊寅년 戊午월 丁丑일, 양력 1698-06-11 | 1698년 5월 5일 |
태그숨기기
원문이미지보기
1698년 5월 4일 정축
四日 丁丑
밤부터 비가 연이어 퍼붓다가 정오가 되어서야 그침
夜雨連注 至午乃止
○지난 봄 무렵 <Term id="M582" name="참군">참군(參軍)인물 외숙</Person>이 〈환산별곡(還山別曲)〉을 지으셨다. 무릇 가곡(歌曲)이란 문자(文字: 漢字)가 많으면 부인이나 어린 아이가 보기 어렵다. 고금의 작자들이 반드시 언문을 쓴 것이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지금 〈환산별곡〉을 보니 문자가 너무 많고 혹 고시(古詩)의 전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나는 이를 자못 단점으로 여긴다. 그래서 언문으로 장가(長歌)를 지어 이에 화답한다. 비록 볼 만한 것은 없지만, 마음에 품은 생각을 서술하고 흥을 부치고 한가로이 마음을 놓고 스스로 만족한 것은 있다. 제목을 〈일민가(逸民歌)〉[1]라고 하였다.
○向在春間 參軍渭陽作還山別曲 凡歌曲 文字多則婦孺難見 古今作者之必以俚語者蓋以此也 今觀還山別曲 文字太多 或用古詩全句 余頗病之 用俚語作長歌和之 雖無可觀 而其述懷寓興閑放自得者則有之 名之曰 逸民歌
주석[ ]
- ↑ 1698년 6월 26일자 일기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