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0320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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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3월 19일 丁丑년 甲辰월 辛未일, 양력 1697-04-11 1697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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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3월 20일 신미
二十日 辛未
흐림
새로 과거에 급제한 민수관(閔受觀)인물[1]이 와서 만났다. 이 사람인물은 초봄에 내려와 도문연을 열었는데, 나를 초대하려는 뜻이 전혀 없었다. 아마도 그 아버지 세침(世忱)인물[2]이 일찍이 경신년(1680)의 일[3]로 환국(換局)한 이후 통소(通疏)에서 빠지며 ‘우리 집안에 우환이 미칠 것이다.’라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올 초 수관인물이 나를 보지 않으려 했던 것도 내가 그 아버지인물의 일로 자기를 배척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후 여론이 모두 수관인물은 설사 배척 받더라도 도리 상 정성스레 초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를 초대할 뜻이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번 만나 뵙겠다는 명함조차도 내민 적이 없어 더욱 크게 비난과 배척을 받았다. 오늘 온 것은 필시 이 때문일 것이다. 그가 비록 초대했더라도 내가 응하지 않았겠지만, 그가 이미 왔으므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맞이하여 대접했다. 이것이 한 마을에서 서로 돕는 의리이고 징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징치하는 것도 무방할 것이기에 정성스레 대접하여 보냈다.
新及第閔受觀來見 此人早春下來 到門設宴 頓無邀我之意 蓋其父世忱曾於庚申時事 換易之後 挺身於通疏 頗有憂及吾家之語 今受觀之不視我 蓋慮我以其父之故 恐有麾斥之患也 厥後物議皆以爲 在觀之道 雖見麾斥 事當懇邀 而不但頓無奉邀之意 全無一番投刺之禮 大加非斥 今日之來 必以此也 彼雖■邀 吾不可應 而彼旣來到 則釋憾迎接 乃是一鄕相助之義 而亦不害爲治之以不治之道 故款接以送


























주석[ ]

  1. 민수관(閔受觀) :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수이(受而), 신묘년(辛卯年, 1651년)생이다. 숙종(肅宗) 22년(1696) 병자(丙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7위로 급제하였다.
  2. 그 아버지 세침(世忱)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 따르면 민수관(閔受觀)의 아버지의 이름이 ‘세침(世琛)’으로 표기되어 있다. 일기에 기록된 ‘세침(世忱)’이라는 표기는 오류로 보인다.
  3. 경신년(1680)의 일 : 경신년(庚申年, 1680)에 남인(南人)이 축출되고 서인(西人)이 득세한 사건을 말한다. 서인인 김석주(金錫冑), 김익훈(金益勳) 등이 남인인 허적(許積)의 서자 허견(許堅)이 종실인 복창군(復昌君), 복선군(復善君), 복평군(福平君)의 3형제와 역모한다고 고발하여 옥사(獄事)가 일어났다. 복창군의 3형제와 허견, 허적 등이 죽거나 유배되었고 남인들이 축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