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20327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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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년 3월 26일 壬申년 甲辰월 丙子일, 양력 1692-05-12 1692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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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년 3월 27일 병자
二十七日 丙子
맑음
화산(花山)공간 사람 수십 명이 왔다.
花山人數十名來
함평공간 하인과 군기감관(軍器監官)개념 이민정(李敏挺)인물이 왔다.
○咸平下人及軍器監官李敏挺來
들으니 암행어사개념의 서계(書啓) 때문에 마침내 파직에 이르렀다고 한다. 체직(遞職)되고자 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마침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Term id="M391" name="암행어사">암행어사인물</Person>가 추고(推考)한 후 <Term id="M481" name="이조판서">이조판서인물</Person>가 계달(啓達)한 바에 따라 취리(就吏)한다고 한다. 이렇게 한다 해서 또한 그에게 무슨 보탬이란 말인가.
聞以暗行書啓 竟至罷職 欲遞未得之際 適足遂願 可幸 暗行旣推考之後 因吏判所達就吏云 於渠亦何益哉
제언(堤堰)물품의 토목공사는 이미 마쳤다. 전후에 동원된 역군(役軍)이 장차 8백에 이르는데도 겨우 둑 쌓는 것을 마쳤을 뿐이다. 안팎의 토역(土役)은 장차 다음달 10일쯤은 되어야 하고, 또 석축 쌓는 일은 그 공력이 모름지기 몇 배는 들 텐데 어찌 대응할는지 매우 염려스럽다.
○堰堤土役旣畢 前後役軍 將至八百 而菫完堤 內外土役 將以來月旬間 又爲石築 其工力必倍簁 何以酬應 可慮可慮
○오후에 출발하여 백치(白峙)공간이대휴(李大休)인물에게 들러 방문하고 저녁때 팔마(八馬)의 장사(庄舍)공간로 돌아왔다.
○午後發行 歷訪白峙李大休 夕還八庄
○오랫동안 역소(役所)에 있었더니 쓸쓸하고 적막함을 견디지 못하겠기에 『파한집(破閑集)문헌』을 열어보았는데 그 안에 있는 시가 다음과 같았다.

몇 점 푸른 산이 호수를 베고 누워있네
공은 이것을 진양도(晋陽圖)라 하였지요
물가에 초가집 몇 채
그 안에 우리 집이 있건만 그림 속에는 없네[1]

내가 차운해서 죽도(竹島)공간의 승경을 읊었다.

중주(中州)의 명승이로다 동정호여
산수가 흘러흘러 한 폭의 그림이 된 것 같도다
만약 이 땅에 견주어본다면 모르겠구나
누가 능히 앞자리를 양보할지



또 문집에는 없지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인물의 시가 다음과 같다.

멀리 안개 낀 첩첩산 아래 강물은 넘실 흘러가고
거울속의 집들은 푸른 봉우리를 마주보네
어디서 온 외로운 배는 바람을 싣고 가는데
언뜻 본 나는 새는 아득히 자취가 없구나[2]



내가 또 차운하였다.

하늘이 큰 못을 만들었으니 물이 넘실 흘러가고
사방을 둘러싼 산[螺鬟][3]에는 푸른 봉우리가 솟았네
가운데에는 떠내려온 듯한 오배골(鰲背骨)[4]
봉우리에 올라 굽어보니 마치 신선의 자취를 쫓는 듯 하네

○久在役所 不堪愁寂 披閱破閑集 有詩曰

數點靑山枕碧湖
公言此是晋陽圖
水邊草屋知多少
中有吾廬畵也無



余步其韻 而咏竹島之勝曰

中州名勝洞庭湖
山水流傳似畵圖
若使比方於此地
未知誰能讓一頭」



無集中 又有崔孤雲詩曰

烟巒簇簇水溶溶
鏡裏人家對碧峯
何處孤帆飽風去
瞥然飛鳥杳無踪



余又次曰

天開大澤水溶溶
四面螺鬟聳碧峯
中有浮來鰲背骨
登臨況若躡仙蹤
























주석

  1. 『파한집』에 실린 鄭與齡의 「晉州山水圖」
  2. 고운 최치원의 시 「臨鏡臺」
  3. 부처의 머리카락이 소라처럼 되었으므로 佛頭를 나환이라 하고, 또 산 모양을 이르기도 한다.
  4. 지명인 鰲背 골짜기를 의미하기도 하고, 바다를 둘러싼 산악 지형을 자라 등 모양이라 비유하기도 함. 자라등 같은 모양을 형상한 것으로 죽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