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90322
jiamdiary
1699년 3월 2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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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3월 21일 | 己卯년 戊辰월 辛卯일, 양력 1699-04-21 | 1699년 3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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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3월 22일 신묘
二十二日 辛卯
맑음
陽
윤동미(尹東美)인물가 왔다.
尹東美來
○양지사(梁之泗)인물의 노(奴) 춘남(春男)노비이 1월 보름 전에 관곡(官穀)을 납부하지 않은 호수(戶首)라고 창(倉)에서 붙잡아 들이려 했으나, 전염병을 여러 번 앓아 멀리 관아까지 보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어미를 대신 보냈는데, 춘남노비이 스스로 뒤를 쫓아 떠났다가 길가에서 죽었다. 양지사인물는 창(倉)의 차임(差任)개념이 패서 죽였다고 하여 그 어미로 하여금 관아에 고소하게 했다. 영암군수인물가 오늘 직접 와서 검시(檢屍)하니, 양지사인물가 그 어미에게 지시하여 시체에 소금물품을 뿌려서 두었는데 타살의 흔적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군수인물가 분개하고 놀라워하면서 저녁에 우리 집공간으로 돌아왔는데, 시친(屍親)개념[1]과 피고인의 진술을 받아서 장차 관찰사에게 보고하려고 한다.
○梁之泗奴春男正月望前 以官谷不納戶首 自倉捉致 疊經癘疾 不可遠送官門 故以其母替送之 春男渠自追後而去 死於路傍 梁以爲倉差打殺 使渠母發狀 郡宰今日親到檢屍 則梁敎其母洒鹽屍體而置之 而略無打痕 郡宰憤駭 夕歸吾家 捧招屍親及被告人 將欲報使
○중도(中稻)물품를 파종했다.
○中稻落種
주석
- ↑ 시친(屍親): 피살자의 친척. 여기서는 춘남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