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0520
1697년 5월 2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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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5월 19일 | 丁丑년 丙午월 己亥일, 양력 1697-07-08 | 1697년 5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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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리한데 요즘 대감의 건강은 어떠하신지 궁금합니다. 제 집의 일을 차마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사람의 도리로 따져본다면 마땅히 스스로를 온전히 보전할 수 없으나, 질긴 한 목숨으로 세월만 보낼 뿐 통탄스러움을 어찌하겠습니까. (석방을 거두라는) 대간의 계가 그쳐 돌아가실 기일이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경하 드리는 마음이 어찌 평소에 비하겠습니까. 어제 정(鄭) 대감인물을 송별했는데 형도 가실 예정이니 저의 슬픔과 섭섭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전에 들으니 형께서 심(沈) 종(從)인물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저희 부자(父子)의 말을 거론하여 심 종인물을 서운하게 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심 종인물의 말이 꽤 절실하여 지금까지 놀랍고 괴이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책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본래 어리석고 졸렬하여 모든 것이 다른 사람에 미치지 못한데 말은 더욱 못합니다. 그래서 희롱하는 말을 하더라도 세속의 허랑한 농담을 하지도 못하며, 혹여 말이 시비와 관련된 일에 이른다면 비록 향곡의 하찮은 일에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감께서 남쪽으로 오신 4년 동안 제가 만나 뵌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대감은 제가 말을 많이 하거나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저는 평소 재미가 없다고 자처하였고 사람들이 재미없는 것을 취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본성이 갑자기 변할 수 없는 일이니 마음속으로 웃을 뿐입니다. 어떤 망발을 하여 대감의 귀에 거슬리지 않고 굴러서 저희 집안까지 미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대감에게 욕하거나 꾸짖는 일이 없었는데, 어찌 저희 집안일을 친구사이에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정신병에 이르지는 않았으니, 어찌 이러한 사람 사이의 일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저의 여러 아들들이 개돼지 같이 못나지 않음이 없어 행동을 삼가고 말을 삼가지 못합니다만, 제가 그 놈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놈들 말을 듣고 다닐 수 없으니 실언을 하였는지 여부를 제가 알지 못합니다. 심 종인물을 비난한 일이 과연 어떤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형이 저에게 붙잡혔다는 것은 또 무슨 말입니까. 편지를 보내 형의 말을 듣고 싶은 지 오래지만 미루다가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 자식을 잃은 상황에서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이 마땅치 않으나 이 일이 가벼운 듯하지만 매우 중한 일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한 말씀드립니다. 형께서 아낌없이 솔직하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부자가 잘못이 있다면 스스로 반성함이 지당하니 어찌 감히 형님을 원망하겠습니까. 답장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霖雨支離 伏問此時 台起居何如 仰傃區區 弟家事尙忍言哉 揆以人理 宜不自全 而一息頑然 忍度時日 痛歎奈何 聞臺啓已止 行期有定 奉賀之忱 豈尋常比 而昨送鄭台 兄將又去 此間悵缺 何可盡喩 曾聞 兄抵沈從書中 擧弟父子言 有憾沈之事 其說頗緊 至今驚怪在心 自訟無地矣 弟本迂拙 百不猶人 而尤短於言語 雖於戱謔之間 亦不能爲世俗謔浪之態 至或語涉是非 則雖係鄕曲間么麽之事 不曾掉舌 台之南來已四載 弟之添奉非止一二 台曾見弟之多言善諧否 弟常以無味自處 且知人以無味不取 而素性猝難變 心切自笑而已 未知有何妄發不厭於台耳 而轉及於弟之一家乎 雖在他人 未嘗向台誚詆 豈可將吾一家事 說與儕友間乎 弟雖無似 亦不至於病風 豈不知如許尋常間人事乎 弟之諸兒無非豚犬 必不能愼行謹言 而弟不能隨渠而行聽渠之言 則其有失言與否 弟所不知 未知誚沈之言果何事 而兄之見執於弟者 亦何言耶 久欲恭承兄敎 而遷就未果 今在慘慽之中 不宜有此煩說 而此事似歇而甚重 不得不一開口焉 兄須毋吝以直明敎如何 弟之父子如有所失 只當自反 何敢尤兄也 更須回喩幸甚
“편지의 뜻을 잘 알았습니다. 지난번 둘째 아드님인물을 만났을 때 모두 말씀드려서 노형께서 이미 들으셨으리라 생각했습니다만, 이렇게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는 말을 들으니 저도 모르게 부끄럽고 어찌 얼굴을 뵈올지 모르겠습니다. 남의 집안일에 조심스레 말을 삼가지 못해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한번 내뱉은 말은 날랜 마차를 타고도 따라잡을 수 없어[3]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전에 (정언에 임명되었을 때) 조정에서 탄핵당한 일[4]과 (함평 대동미 사건으로) 잡혀갔던 일에 대해 모두 (심 대감인물에게) 의심이 없을 수 없지만 편지로 물어보기가 어려웠기에 우선 단서를 꺼내 놓고 뒤에 자세히 물어 볼 바탕으로 삼고자 했던 것인데, 형의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여 형의 분노가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편지로 어찌 다 말하겠습니까.”
書意備悉 曾對第二賢胤說破無餘蘊 想老兄必已聞之 而承此以直明敎之示 不覺赧赧然 無以爲對也 處人一家之間不能愼默 使至於此 駟不及舌 雖悔曷追 向時見駁之擧 被拿之事 皆不能無疑 而難以書辭相問 故先發其端 以爲後日質問之地 此皆爲兄地不料 兄之宿怒至此也 書何能悉
주석
- ↑ 죄수를 다시 심리하여 너그럽게 처결함
- ↑ 자기 분수에 넘치는 일을 근심함. 자신의 근심을 가리키는 겸사.
- ↑ 『논어(論語)』「안연(顔淵)」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극자성(棘子成)이 말했다. ‘군자는 질(質)일 뿐이니, 문(文)을 어디에 쓰겠는가?’ 이를 듣고 자공(子貢)이 말했다. ‘애석하다, 그 사람의 군자에 대한 말이여! 한 번 내뱉은 말은 날랜 마차로도 따라잡지 못한다. 문이 질과 같으며 질이 문과 같은 것이니, 호랑이와 표범의 무두질한 가죽은 개와 양의 무두질한 가죽과 같다. (棘子成曰 君子質而已矣 何以文爲 子貢曰 惜乎 夫子之說君子也 駟不及舌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鞟 猶犬羊之鞟)”
- ↑ 윤이후가 정언(正言)에 임명된 후 사직 상소를 올리지도 않은 채 서울로 올라오지 않아 교리(校理) 심중량(沈仲良)에게 탄핵당했던 사건을 가리킴. 『승정원일기』 18책 숙종 16년(1690) 7월 13일 임인 기사 참조. “校理沈仲良所啓 正言尹爾厚 承召今已三朔 而旣無辭疏 又不上來 事體實涉無據 而臺閣尙無糾劾之擧 亦甚不當矣 上曰 除拜三朔 尙無辭疏 又不上來 事甚未安 不可無警責之道 遞差 可也”
- ↑ 과거 급제 등 경사가 있을 때 성묘하여 고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