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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2월 10일 | 己卯년 丁卯월 辛亥일, 양력 1699-03-12 | 1699년 2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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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2월 11일 신해
十一日 辛亥
맑음
陽
전인(專人)을 시켜 김(金) <Term id="M584" name="참의">참의(參議)인물</Person>에게 편지를 보내 서울공간 소식이 왔는지를 물으니, 귀양 간 사람들 중 방귀전리(放歸田里)개념[1]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정제선(鄭濟先)인물과 한구(韓構)인물도 모두 방귀전리 되었는데, 제주(濟州)의 전 순천부사 송상주(宋尙周)인물만은 풀려나지 못하고 감등(減等)개념[2]만 되었으며, 장희재(張希載)인물는 원래부터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專書金參議問京報來否 則諸謫無不放歸田里 鄭齊[3]先韓構亦皆放歸田里 濟州宋順天獨不蒙宥 只減等 張希載元不擧論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