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90210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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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2월 9일 己卯년 丁卯월 庚戌일, 양력 1699-03-11 1699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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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2월 10일 경술
十日 庚戌
흐림
정(鄭) 생(生)인물이 왔다.
鄭生來
두의(痘醫)개념 류상(柳瑺)인물[1]은 계해년(1683)에 주상전하인물께서 천연두개념를 앓으셨을 때 밤낮으로 입시하며 어상(御床) 곁에서 자면서 거처했는데, 조그마한 효험이라도 있으면 대전(大殿)과 내전(內殿)에서 무수한 상을 내렸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상인물의 병이 나은 후에는 전하께서 친히 황금 권자(圈子)물품[2]를 하사하고 수백 금(金)을 지급하여 집을 사서 거처하게 하셨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중요한 고을의 수령에 제수하며 총애했다. 이번에 춘궁(春宮)인물께서 천연두개념를 앓았을 때도 밤낮으로 입시했는데, 예전처럼 빈번히 상을 받았다. 주상전하인물께서 친히 입던 담비갖옷물품을 하사하고 특명을 내려 두 자급을 뛰어넘어 정헌대부(正憲大夫)개념로 삼았으며, 상의원(尙衣院)개념에 영을 내려 금대(金帶)물품가죽신물품 등의 물건을 만들어 지급하게 했다. 전후의 융숭한 총애가 의관으로서는 전에 듣지 못한 바이다. 계해년 후에 참판(參判)개념 이현석(李玄錫)인물이 「성두가(聖痘歌)」[3]라는 칠언고시를 지어 이 일을 기리어 칭송했다. 류상인물의 의술은 박진희(朴震禧)인물로부터 배운 것이다. 박진희인물천연두개념 치료에 뛰어난 의사였지만 류상인물이 청출어람이라는 명성이 있다. 의술도 신묘하지만 사람됨도 착하고 자상하다는 데에 사람들 간에 이견이 없으니, 실로 세상에 드문 인재이다.
○痘醫柳瑺曾於癸亥自上痘患之時 晝夜入侍 寢處于御床之側 有一微效 則大殿及內殿賞賜無數 如是者非一 及上候向差之後 上親賜黃金圈子 至給數百金 使之買舍以居 厥後累除要邑以寵之 今番春宮痘患 晝夜入侍 寵錫頻煩 一如前日 而上親脫御衣貂裘以賜之 特命超二資爲正憲 令尙方造給金帶靴子等物 前後惠寵之隆重 醫官所未聞者也 癸亥後參判李玄錫作七言古詩 名曰聖痘歌 褒揚是事 柳之術學於朴震禧 朴亦痘疾明醫 而柳有靑藍之名 其術如神 其爲人也 良善慈詳 人無異言 實曠世之人材也


























주석[ ]

  1. 류상(柳瑺, 1643 ~ 1723). 천연두 전문 의관. 柳相 혹은 柳尙으로 쓰기도 함. 판관 유인(柳湮)의 손자이자 문해백(文海伯) 유경집(柳景緝)의 서자이다. 1683년 숙종의 두환(痘患)을 치료하여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고, 이어 서산군수에 임명되었다가 왕이 완치되지 않았으므로 멀리 보낼 수 없다 하여 고양군수로 전임되었다. 1699년 세자의 두환을 완치시켜 지중추부사에 오르고, 1711년 왕자를 치료하여 합천군수를 거쳐 삭녕군수에 제수되었다. 저서에 《고금경험활유방(古今經驗活幼方)》이 있다.
  2. 권자(圈子): 관자(貫子). 망건에 달아 당줄을 걸어넘기는 구실을 하는 작은 고리. 실용적 구실 이외에 관품 내지는 계급을 표시하는 사회적 구실도 했는데, 금관자는 2품 관원이 사용했다.
  3. 이 시는 《유재집(游齋集)》 권5 〈우유록(優遊錄)〉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