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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3일 (월) 10:36 판
1693년 12월 27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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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년 12월 27일 을미(병신)
二十七日 乙未
맑음
陽
典簿宅奴自京還見兒輩平書
聞崔淑婉出新生王子以驚風十三日不救
○館學奴婢推刷官元致道歷訪
○지난번에 임금인물께서 비망기(備忘記)개념를 내려 진덕수(眞德秀)인물를 종향(從享)하라고 특별히 명하시고, “사문(斯文)에 큰 공이 있으니 태산북두를 보듯 우러러 보네. 어찌 유림(儒林)에서만 높일 것인가, 마땅히 조두(俎豆)를 올려야하리.”라고 시를 지었으나 이미 배식(配食)을 하고 있어서 그만두었다.인용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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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 없습니다○頃日上下備忘記特命眞德秀從享 仍製詩曰 斯文存大功 仰止若山斗 奚但儒林尊 是宜享俎豆云云 而已爲配食故止
주석
- ↑ 본문에는 ‘淑婉’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淑媛’의 잘못이다. 숙원은 왕의 후궁에게 내리는 종4품의 위호(位號)이다. 최 숙원은 영조의 생모로서, 나중에 숙빈(淑嬪)의 지위까지 오른다.이 새로 낳은 왕자(王子) 숙원 최씨가 낳은 첫째 아들 영수(永壽). 10월 6일에 태어났으나 2달 만에 사망했다. 영조는 숙원 최씨의 둘째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