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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3일 (월) 23:01 기준 최신판


1695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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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5년 4월 19일 乙亥년 辛巳월 辛亥일, 양력 1695-06-01 1695년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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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5년 4월 20일 신해
二十日 辛亥
맑음.
陽
김정진(金廷振)인물이 갔다.
金廷振去
아침 후에 무이천(武夷川)공간으로 갔다. 이곳은 산이 둘러싸고 골짜기가 깊어 매번 그 경치를 한번 완상해보고 싶었으나 여태껏 그러지 못했었다. 또한 나위방(羅緯房)인물에게 집을 지을 재목물품이 있어서 팔려고 하나, 살펴볼 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 때문에 직접 간 것이다. 김정진인물이 마침 여기에 머물고 있어서 원래 거주하고 있는 안후림(安后臨)인물, 나위방인물과 함께 나와 맞이해 주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집 뒤에 올라 둘러보았다. 나위방인물의 선조는 이곳에 거주하며 세력과 부로 이름이 났었는데, 그 집의 담장물품과 섬돌물품이 아직도 남아있다.
朝後往武夷川 蓋此地山圍谷深 每欲一賞而未果 且羅緯房有家材木欲賣 而無可審視之人 玆以躬進 金廷振方留接於此 故與元居安后臨羅緯方出迎暫語 仍登覽家後 蓋羅之先居此地 以豪富鳴 墻砌尙在
길을 돌려 안후림인물의 집으로 내려왔다. 안후림인물은 새 집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轉下安家 安方搆新舍 未完
곧바로 김정진인물 생(生)을 데리고 은물품을 채굴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김정진인물은 수하 2명, 승려 1명을 데리고 날마다 쉼 없이 땅을 파서 이제 막 대엿새를 넘겼는데, 판 깊이가 2장(丈) 쯤이었다. 은광맥물품 이 아주 풍부하여 황원(黃原)공간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앞으로 큰 이익이 날 텐데 지금 식량이 떨어졌다고 말하며, 나에게 양식을 청했다. 그 말이 매우 절박하였지만, 나도 저축한 바가 없어 응해줄 수가 없었다. 일이 잘 될지 안 될지는 미리 알 수 없으나, 굶주린 수하 몇 명만을 데리고 바위 밑에서 큰 재물을 얻고자 하니 바람과 달을 붙잡고자 하는 것이나 다름 없으며, 궁핍한 처지의 빈손으로 공연히 끝없는 공력만 쏟아 붓고 있다. 내가 누누이 간절히 질책했으나 김정진인물은 멈출 줄 모르니, 가소롭기도 하고 개탄스럽기도 하다.
旋携金生 到鑿銀處 金率二卒一僧 日鑿不已 才過五六日 而其深已二丈餘 謂言銀脈甚富 非黃原之比 將見大利 而無以繼食 請糧於我 言甚切迫 而我亦無儲 未能酬應 事之利不利 姑未預料 而以數介飢卒 欲求重寶於巖石之底 有同捕風捉月 而薄狀空拳 徒費無限功力 吾屢切責 而金不知止 可笑可嘆
○오리동(烏里洞)공간을 거쳐 입점촌(笠店村)공간을 찾아가 최(崔) <Term id="M569" name="진사">진사인물</Person>의 서당(書堂)에 들어가 잠시 쉬었다. 이곳은 고(故) 최상호(崔尙虎)인물가 지은 곳이다. 최상호인물는 후진(後進)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아 밤낮으로 이곳에서 열심히 가르쳐, 원근에서 모인 배우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 중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꽤 많으니, 이는 모두 최상호인물의 덕택이다. 그런데 지금 강사(講舍)가 무너져 지탱하기 힘든데도 이을 사람이 없다. 이는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많으나 스승의 은혜가 아버지와 임금과 같다[1]는 의(義)를 모르는 것이다. 개탄스럽다.
○由烏里洞 尋笠店村 入崔進士書堂 少憩 此卽故崔尙虎所搆 崔以訓誨後進爲業 日夜講磨于此 遠近來學者甚衆 此地之人 識字者頗多 皆崔之德 而今講舍頹毁難支 人無繼之者 受學者多不知生之族也之義 可嘆也已
○극인(棘人)개념 양가송(梁可松)인물을 조문했는데, 그가 어제 그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기 때문이다. 김성삼(金聖三)인물, 최추익(崔樞翊)인물, 최운원(崔雲遠)인물, 최운제(崔雲梯)인물도 함께 자리했다. 양가송인물이 간단한 음식물품을 내어 대접했다. 한참 있다가 집에 돌아왔다.
○弔梁可松棘人 梁昨過其慈葬也 金聖三崔樞翊崔雲遠雲梯在座 梁出小饌待之 良久歸家則
연동공간의 윤선형(尹善亨)인물과 윤선시(尹善施)인물가 와서 기다렸고 이성(爾成)인물은 나주공간에서 그 처인물를 데리고 돌아와 도착했다. 잠시 후 모두 작별하고 갔다.
蓮洞尹善亨尹善施來待 爾成自羅州率還其妻來到 須臾並辭去
○지원(智遠)인물이 지난 번 자기 차인(差人)에게 끌려 전주공간에 갔다가 오늘 저녁 돌아왔다.
○智遠頃爲其差人所執往全州 今夕還來
정광윤(鄭光胤)인물이 와서 숙위했다.
鄭光胤來宿






















주석[ ]

  1. ↑ 이는 가르침을… 임금과 같다: 《小學·明倫》 “欒共子曰 民生於三 事之如一 父生之 師敎之 君食之 非父不生 非食不長 非敎不知 生之族也 故一事之 唯其所在 則致死焉 報生以死 服賜以力 人之道也” 여기서 ‘族’은 ‘類’의 뜻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