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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2월 27일 | 己卯년 丁卯월 戊辰일, 양력 1699-03-29 | 1699년 2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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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2월 28일 무진
二十八日 戊辰
흐리다 맑음
陰陽
○해남의 향리 유필한(劉弼漢)인물이 서울공간에서 돌아와 잘 있다는 아이들의 편지를 전해주었는데 14일에 보낸 것이었다. 아산(牙山)공간의 종말제(從末弟) 이대원(李大源)인물이 전염병을 앓은 후 숙환인 산증(疝症)이 심해져서 피를 토하다가 2일에 죽었다고 한다. 그 형제들이 몇 달 사이에 잇달아 죽으니, 참혹함과 비통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에 상이 나서 이런 참상을 보지 않게 한 것이라,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서운함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海吏劉弼漢自京還 傳兒輩平書 卽十四出也 牙山李從末弟大源 時疾之餘以宿患疝症吐血 初二奄忽云 其兄弟數月之間相繼而逝 慘痛不可言 但喪出於兩親下世之後 不令見此慘狀 以我言之 則可無憾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