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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3월 22일 | 戊寅년 丙辰월 戊戌일, 양력 1698-05-03 | 1698년 3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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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3월 23일 무술
二十三日 戊戌
맑음
陽
率興緖果願爾成 曉行靈光高祖妣忌祀
○백치(白峙)공간의 외숙인물이 서울공간 행로에 데려 갔던 노(奴)노비가 돌아와서 창서(昌緖)인물, 두서(斗緖)인물 두 아이가 13일에 보낸 잘 지낸다는 편지를 받았다. 정(鄭) <Term id="M649" name="판서">판서(判書)인물</Person>가 10일에 대부인(大夫人)의 상을 당했다고 하니 놀라움과 슬픔을 이길 수 없다. 다만 정 대감인물이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 뵌 지 일 년이 지났고 향년 87세이시니 여한은 없다 하겠다.
○白峙渭陽京行帶去奴還 得昌斗兩兒十三日平書 鄭判書 初十日遭大夫人喪 不勝驚怛 第鄭台蒙放 歸覲經年 享年八十七矣 可謂無餘憾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