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90717(윤달)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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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윤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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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윤7월 16일 己卯년 壬申월 癸丑일, 양력 1699-09-10 1699년 윤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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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윤7월 17일 계사
十七日 癸丑
맑음
金三達鄭光胤來
복만(福萬)인물이 지나다 들렀다.
福萬過
백포(白浦)공간의 배편이 서울공간에서 돌아와, 아이들이 초3일에 보낸 잘 있다는 편지를 받아보았다.
○白浦船便自京還 見兒輩初三出平書
흥아(興兒)인물가 해질 무렵 관가에서 돌아왔다. 영암군수인물의 뜻은 다음과 같았다. 즉, 이미 관찰사개념에게 보고했는데, 관찰사개념 역시 양지사(梁之泗)인물가 한 짓은 터무니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번에는 변통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정이 진실로 그러하다. 나는 안면과 인정으로 곡진히 응해줬을 뿐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어찌하겠는가.
○興兒自官家暮還 郡宰之意以爲 旣已報使 使亦以梁之所爲爲無據 今難變通云 事體誠然 吾自曲酬顔情而已 至於吾所不能者 奈何
○들으니, 새 관찰사개념 박태순(朴泰淳)인물이 논박당해 체임되었고, 김시걸(金時傑)인물이 후임이라고 한다. 박태순인물은 소론 가운데 준론(峻論)을 주장하는 자이다. 근래 노론이 더욱 방자하게 공격하여 소론이 남아나는 무리가 없는데, 박태순인물이 논박당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聞新方伯朴泰淳被駁而遞 金時傑爲代云 朴是少論之峻者 近來老黨益肆搏擊 少論無遺類 朴之見駁以此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