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80601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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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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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5월 30일 戊寅년 己未월 甲辰일, 양력 1698-07-08 1698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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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6월 1일 갑진
一日 甲辰
흐리고 가랑비. 혹 맑음.
陰霏或陽
천리 밖에서 연달아 대기(大忌)[1]를 지내니, 비통함을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連過大忌於千里之外 悲痛何言
해남 읍리(邑吏)인물서울공간에서 지난 달 17일 아이들이 보낸 잘 있다는 편지를 전해주었다.
海邑吏自京傳兒輩前月十七平書
○청국(淸國)에서 보낸 이부시랑(吏部侍郞)개념 도대(陶岱)인물가 곡물을 이끌고 국경에 당도하였다. 장차 시장에 팔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사미화(私米貨)개념가 매우 많았다.[2] 먼저 온 미곡의 값도 아직 충당하기 어려운데 지금 또 이와 같으니 장차 어찌할 계책인지 모르겠다. 우상(右相)개념 최석정(崔錫鼎)인물이 접반사(接伴使)개념로 가서 머물고 있다. 청나라 이부시랑개념우리 임금님인물께 편지를 써서 자기를 '권제(眷弟)'라고 칭했으니, 그 역시 치욕이다. 당초 청나라에 물품을 청하자고 발의한 자들인 윤지선(尹趾善)인물이세화(李世華)인물최석정(崔錫鼎)인물이유(李儒)인물 등은 바야흐로 대간개념의 탄핵을 받았다고 한다. 나랏일의 어지러움이 이에 이르렀으니 통탄한들 어쩌겠는가.
○淸國送吏郞陶岱領谷物來到境上 言將市賣 而私米貨甚多 先來米谷之價 尙難充備 今又如此 未知將何以爲策 崔右相錫鼎以接伴往留 吏郞修書於國 自稱眷弟 其亦辱矣 當初爲請糶議者 尹趾善李世華崔錫鼎李儒等 方遭臺彈云 國事之淆亂至於如此 痛歎奈何
이신우(李信友)인물가 갔다.
○李信友去
○어제부터 설사가 자주 나는데 아마도 비가 오고 습기가 많은 절기에 소식(素食)한 것이 체한 것 같다. 오늘 아침부터 밥을 물리고 콩죽(豆粥)물품 한 보시기(甫兒)만으로 두 끼를 연명하였다. 쌀알이 속을 막지 않게 하여 병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전부터 뱃속에 조금 편치 않은 징후가 있으면, 늘 이렇게 했다. 여러 약을 써봤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다.
○自昨泄瀉頻數 蓋緣雨濕之節 行素食滯也 自今朝却飯 只以豆粥一甫兒 兩時連命 俾不得粒米滯中以助病也 從前少有腹中不安之候 每如是 諸藥之功 皆莫及焉
























주석[ ]

  1. 6월 1일이 윤이후의 생모 기일이며, 5월에 큰 제사가 여럿 있음. 윤회봉사 관행에 따라 서울에서 지낸 제사에 참석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인 듯함.
  2. 이부 시랑 도대가 국경에 당도하여, 가져온 물품 3만석 중 2만석은 사상(私商)에게 무역을 시키겠다고 하여 문제가 생겼다. 관련 내용은 《숙종실록》 32권, 1698(숙종24)년 5월 11일 갑신 1번째기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