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61014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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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10월 13일 丙子년 己亥월 丁酉일, 양력 1696-11-08 1696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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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10월 14일 정유
十四日 丁酉
맑음
이대휴(李大休)인물서울공간에서 내려왔다. 위양(渭陽)인물은 한질(寒疾)을 앓은 후라 길을 떠나기 어려워 모시고 올 수 없었다. 아이들이 2일에 보낸 편지를 받았다. 의금부개념의 좌기(坐起)는 조정에 일이 많아 하지 못했고 논의도 이미 느슨해져 오래지 않아 결말이 날 것 같다고 한다. 행운을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으나 일이 이렇게 지체되니 걱정과 근심을 이루 말할 수 없다.
李大休自京下來 渭陽寒疾之餘 行役爲難 不得奉來 見兒輩初二日書 金吾之坐 朝家多事 不得爲之 而論議已緩 匪久當有決末云 不無望幸之心 而遲延至此 悶慮不可言
이현명(李顯命)인물성규헌(成揆憲)인물의 사건에 대해 민진장(閔鎭長)인물, 이정겸(李廷謙)인물, 이정명(李鼎命)인물이 탑전(榻前)에서 극력 구원하여 3,000리 유배로 조율(照律)하여 아뢰자, 인물께서 전교하시기를 배소단자(配所單子)개념를 도로 내어줄테니 절도(絶島)에 정배(定配)하라고 분부하셨다. 이에 이현명인물제주공간로, 성규헌인물진도공간로 정배되었다.
○以李顯命成揆憲事 閔鎭長李廷謙李鼎命 榻前力救以流三千里照律以入 傳曰 配所單子還出給 絶島定配事分付 李顯命濟州 成揆憲珍島定配
○지난번에 방찬(方燦)인물 등을 추국했을 때 공초(供招)개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모의하여 응선(應先)노비호패(戶牌)물품를 탈취해서 김태윤(金泰潤)인물에게 보여주었더니 거절하며 보지 않았습니다. 목인(木人)물품을 묻을 때 위안제문(慰安祭文)을 지어달라고 청했더니 또한 글을 잘 짓지 못한다고 사양하면서 거절했습니다.” 김태윤인물은 흉악한 모의와 원래 상관이 없었으나, 마침내 흉인(凶人)들과 아는 사이라는 이유로 죄명을 뒤집어 써 곤양(昆陽)공간으로 원배(遠配)되었다. 그는 재상가의 자제이니 중인(中人) 무리와 범연(泛然)히 알고 지낸 것은 이상스런 일이 아니나 이것이 죄가 되어 유배까지 가게 되었다. 이는 소위 “죄를 씌우는데 구실이 없음을 걱정하랴”라는 것으로, 정말 한심한 일이다. 김태윤인물헌길(獻吉)인물의 아들이다. 그 아버지가 제주도공간 유배지에서 상국(相國)인물을 모시고 있는데 그 또한 이런 환난을 당했으니, 그 집안의 절박한 처지를 이루 말할 수 없다.
○頃者 方燦等推鞫時 招內有曰 謀奪應先戶牌出示金泰潤 則拒而不見 埋兇時 慰安祭文請製 金泰潤亦以不文 辭而却之云 金之於凶謀 元不干涉 而乃以與凶人相知 勒爲罪名 遠配昆陽 金以相家子弟 泛知中人輩 不是異事 而以此爲罪 至於竄謫 此所謂欲加之罪 何患無辭者也 良可寒心 泰潤卽獻吉之子也 其父方奉侍相國於濟州 荐棘中 渠又罹此患 其家切迫之狀 不可言也
윤욱(尹昱)인물강릉(江陵)공간에서 왔으나, 병 때문에 만나지 못했다.
○尹昱自江陵來 病不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