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60620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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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6월 19일 丙子년 乙未월 甲辰일, 양력 1696-07-18 1696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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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6월 20일 갑진
二十日 甲辰
맑음
절뚝거리는 물품을 침으로 치료했지만 갈 수가 없었다. 부득이 읍인(邑人)의 말로 바꾸어 별을 이고 출발했다. 신막(新幕)공간에 이르자 날이 비로소 밝아졌다. 올목(兀木)공간 주막에서 말을 먹였다. 내가 가지고 간 암말물품도 절뚝거리다가 이곳에 오자 더욱 심해져, 결코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여산(礪山)공간김덕린(金德獜)인물 집에 이르러 날이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으나 머물러 유숙하기로 했다. 바로 물품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다. 노자는 다 떨어져 가는데 온갖 일로 여정이 이렇게 지체되어 몹시 염려스럽다.
蹇馬針治而不可行 不得已換取邑人之馬 戴星而發 到新幕 天始明 秣馬兀木酒幕 吾行所持雌馬亦蹇 到今轉甚 決難前進 到礪山金德獜家 日未午而止宿 仍爲針治 行槖向垂 而種種滯行如此 極悶極悶
○12일에 성균관개념 유생들이 상소(上疏)하여 이르기를, “지난날 업동(業同)노비 등의 초사(招辭)개념는 가히 의심스럽습니다. 단서가 명백한데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고 계(啓)를 올려 파직하게 했습니다. 추국(推鞫)하는데 힘을 써서 이를 맡은 대신은 여력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라고 하였다. 소두(疏頭)는 이세기(李世耆)인물이다. 상(上)인물께서 “대신의 뜻이 대개 깊고 먼 염려에 있으나, 상소의 말이 이와 같으니 즉시 도로 출급(出給)[1]하라.” 하시고, 또 “소두(疏頭)를 정거(停擧)하게 하라.”고 하셨다. 승정원이 복역(覆逆)개념[2]하자, 단지 “번거롭게 하지 마라(勿煩).”는 비답만 내리셨다. 삼정승과 당시 판의금부사개념 이세화(李世華)인물가 모두 대궐을 나가 달아나고, 상소를 올린 유생도 공관(空館)개념[3]했다. 출발한 후에 소식을 듣지 못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대신이 진달(進達)한 말과 여러 대신들의 상소 중 ‘추국을 정파하라고 한 것은 깊이 생각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하였고, 왕이 또한 이 말을 차용(借用)하였는데, 이른 바 ‘깊고 먼 염려[深長之慮]’라고 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삼사(三司)개념가 모두 ‘우선 속히 추국을 멈추라.’고 해놓고는, 다시 궁문(窮問)하라는 뜻을 힘써 주장하고 있으니, 끝에 어찌될지 모르겠다.
○十二日 館儒上疏言 頃日業同等招辭 可疑 端緖明白而不爲鉤覈 啓罷 推鞫力攻主鞫大臣 不遺餘力 疏頭卽李世耆也 上以爲大臣之意 盖有深長之慮 而疏辭如此 卽爲還出給 仍命停擧疏頭 政院覆逆 只以勿煩爲批 三台及其時判金吾李世華 皆出走 疏儒亦空館 而發行之後 未聞消息 良可鬱鬱 大臣進達之語及諸臣疏中 以停罷推鞫 盖有深長之慮云 而上亦借而用之 所謂深長之慮 未知何意也 三司俱發以徑先罷鞫 更爲窮問之意 力爭之 未知末終之如何也


























주석[ ]

  1. 출급 : 승정원에 들인 상소문을 도로 내어줌.
  2. 복역 : 승정원에서 임금의 명을 따르지 않고 복계(覆啓)함.
  3. 공관 : 성균관 유생이 시위하기 위하여 성균관을 비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