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60217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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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2월 16일 丙子년 辛卯월 癸卯일, 양력 1696-03-19 1696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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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2월 17일 계묘
十七日 癸卯
맑음
정선택(鄭善擇)인물우이도(牛耳島)공간에서 돌아와 류(柳) 대감인물의 답장과 역서(曆書)물품 3건을 전해주었다. (…아래는 편지 내용으로 보인다)

...■■도(■■島)의 배가 돌아와 형의 답장을 받고 여러 번 보니 답답함이 씻겨나갑니다. 추위에도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고 더욱 위로가 됩니다. 여기는 늙고 어린 사람 모두 여전히 보전하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바다에서 바람 부는 날이 봄이 되어 더욱 심해져서 문을 닫고 틀어박혀 끙끙거릴 뿐입니다. 지금은 정신과 기력이 골골하여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살쩍과 수염은 눈처럼 희고 치아는 다 빠져 세상의 취미는 모두 다하였으니 다시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늙었으니 세상일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혹 고요하고 조심스러운 곳을 얻어 늘그막을 즐긴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유쾌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유폐되어 있으면서 목숨이 오히려 남들의 몇 마디 입놀림에 달려 있으니, 비록 상주(常州) 양선현(陽羨縣)의 땅이 있었던들 눈 감기 전에 풀려나지 못했던 소식의 상황[1]을 두려워하는 처지와 같습니다. 형은 바닷가에 맑고 빼어난 곳을 얻으시어 도구(菟裘)[2]를 영위하며, 또 듣기로 집을 짓고 배를 띄우며 음악을 연주하면서 청도(淸都)[3]의 생활을 하신다니, 이 몸이 바닷가의 정자에 올라 형과 함께 한 번이라도 손을 잡고 훌륭한 글을 써보지 못하는 것[4]이 그저 한스러울 뿐입니다. 마치 왕유(王維)가 망천(輞川)에서 배적(裵迪)을 맞아 왔던 옛 일[5]이 사람으로 하여금 신바람 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형이 만년에 얻은 두터운 복이 부럽습니다. 기문(記文)은 여유 있고 장중하며, 시편(詩篇)은 맑고 유려하여 두세 번 읊으니 방 안 가득한 빛을 문득 깨닫습니다. 저는 근심하고 슬퍼하면서 붓과 벼루를 버린 지 오래이며, 또한 죄를 생각하면 간신히 붙어 있는 목숨으로 글을 짓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형이 비록 유배되는 것을 면하였다 하더라도 역시나 궁벽한 곳에 있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글을 지어 주고받는 것도 큰 해악이 되지는 않을 것 같으니, 의리는 천천히 파계(破戒)하기로 하고 보잘것없게나마 만날 자리를 만들어 즐거움을 만끽할 생각입니다. 《당시(唐詩)문헌》 4책은 잘 받았습니다. 정선택(鄭善擇)인물이 돌아갈 것이니, 이 사람을 마주하면 유배지의 소식을 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파서 이만 줄입니다.
병자(1696년) 2월 6일 남도(南島)의 누제(纍弟)

鄭善擇自牛耳島還 傳柳台答書 曆書三件

■■■■■■■■■■■■■■■■■■■■■■■島船歸 伏承兄惠復 十回披玩 煩襟可滌 仍審輕寒尙峭起居珍瑟 尤用昻慰 弟老幼俱保如昨 此爲幸矣 而海中風日 春來尤惡 閉戶縮蟄呻楚無已 時精神氣力厭厭 若泉下人 鬂鬚如雪 齒牙盡缺 世趣都盡 亦復奈何奈何 吾輩俱老矣 萬事都不關 倘得一區靜敬以娛暮境 則足爲人間大婾快 而如弟絶域拘幽 性命尙寄人齒吻中 雖有常州陽羨之土 恐未得自放於未瞑之前 兄能占得海山淸絶方營菟裘 且聞有齋舫絲竹之佐 便作淸都生活 只恨未致此身於海亭之上 與兄一握手點檢雲烟 如王輞川邀裵迪故事 令人心神飛動 且羨兄晩福之優也 記文紆餘典重 詩什淸新遒麗 諷詠再三 斗覺一室光矣 幽憂攝處 久抛筆硯 且念罪釁 餘喘啽哢非分 而兄雖身免行遣 亦一窮迷中人 同病相唱酬 似不至大害 義理徐當破戒 搆拙以替接席跌蕩之歡爲計 唐詩四冊依到耳 鄭善擇還歸 若對此人 可悉澤畔消息 餘病甚不宣
丙子二月初六日南島纍弟


























주석[ ]

  1. 상주(常州)의 양선현(陽羨縣)의...소식의 상황 : 송나라 때 소식(蘇軾)은 혜주(惠州) 등 여러 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큰 아들 소매(蘇邁)가 살던 상주의 양선현에서 숨을 거두었다. 허균의 〈四友齋記〉에 “관동(關東) 지방은 나의 옛 터전이라 그 경치며 풍물이 중국의 시상산(柴桑山), 채석산(采石山)과 견줄 만하고, 백성은 근실하고 땅은 비옥하여 또한 중국의 상숙현(常熟縣)과 양선현(陽羨縣) 못지않다.(關東 余舊業也 其景物風煙 可與柴桑采石相埒 而民愿土沃 又不下於常熟陽羨)”라는 말이 나오는 것과 같이, 일반적으로 양선현은 비옥하고 살기 좋은 지역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 한들 그곳이 유배지라면 그 의미가 퇴색하듯이, 글쓴이는 스스로가 처한 부정적 상황을 옛날 소식의 불우했던 처지에 빗대어 강조하고자 이 표현을 차용하였다.
  2. 도구(菟裘) : 노(魯)나라의 고을 이름으로, 벼슬을 내놓고 은거하는 곳이나 노후에 여생을 보내는 곳을 말한다. 《春秋左氏傳・隱公11年》에, “우보가 환공을 죽이기를 청했으니, 이는 장차 그 공으로 태재의 벼슬을 구하려 함이었다. 이에 노(魯) 은공(隱公)이 말하기를 ‘내가 임금이 된 것은 조카가 어렸기 때문이니, 이제는 내가 장성한 그에게 자리를 물려주고자 한다. 그러고는 도구에 집을 짓고 거기에서 나의 노년을 보내려 한다.’라고 하였다.(羽父請殺桓公 將以求大宰 公曰 爲其少故也 吾將授之矣 使營菟裘 吾將老焉)”라는 말이 나온다.
  3. 청도(淸都) : 옥황상제가 사는 궁궐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죽도에서 신선처럼 거처하며 만년을 보내는 윤이후의 일상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 《列子・周穆王》에 “목왕은 실로 이곳이 전설상의 청도(淸都)와 자미궁(紫微宮)이며, 이 소리가 전설상의 균천(鈞天)과 광악(廣樂)의 곡(曲)으로, 여기야말로 옥황상제가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王實以爲淸都紫微鈞天廣樂 帝之所居)”라는 구절이 보인다.
  4. 훌륭한 글을 써보지 못하는 것 : 원문의 ‘운연(雲煙)’은 구름이나 연기가 자유자재로 약동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필세(筆勢)의 자연스러움을 비유한 것이다. 두보(杜甫)가 쓴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장욱은 석 잔 술에 초성(草聖)으로 전해지는데, 왕공(王公)의 앞에서도 모자 벗어 이마를 드러내고, 종이에 붓 대고 휘두르면 구름 연기 같았네.〔張旭三杯草聖傳 脫帽露頂王公前 揮毫落紙如雲煙〕”라고 하였다.
  5. 왕유(王維)가 망천(輞川)에서 배적(裵迪)을 맞아 왔던 옛 일 : 왕유(王維)와 배적(裵迪)은 모두 당나라 때의 문인이다. 왕유는 망천(輞川)에 집을 짓고 은거하였는데, 특히 그곳의 풍경을 직접 그린 왕유의 망천도(輞川圖)는 현재까지도 명작으로 언급된다. 배적은 왕유의 벗으로서 당 현종(玄宗) 천보(天寶) 연간에 왕유와 함께 망천에 은거하면서 유람하며 시를 짓고 금주(琴酒)를 즐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