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50526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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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5년 5월 25일 乙亥년 壬午월 丁亥일, 양력 1695-07-07 1695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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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5년 5월 26일 정해
二十六日 丁亥
맑음
아침 전에 보성(寶城) 댁(宅)공간에 갔다가 밥을 먹고 출발했다. 윤(尹) 서흥(瑞興)인물 형제와 윤주미(尹周美)인물 숙(叔) 모두 설(薛) 생(生)인물을 따라 출발하여 백도(白道)공간 논정(論亭)공간의 내가 점쳐둔 곳에 도착했다. 점지한 곳을 보고 말하길 “대결(大結)이라 할 만하나 임계(壬癸) 방면이 허하여 초년에 패할듯하니 축향(丑向)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시민(李時民)인물의 집터는 꽤나 좋고 안온하여 이곳보다 낫다.”고 했다. 이시민(李時民)인물이 와서 만났다.
朝前進寶城宅 食後發行 尹瑞興兄弟及尹叔周美並隨薛生而發到白道論亭余所占處 看點曰 可謂大結而壬癸方虛 似有初年敗 丑向宜當 李時民家基頗好安穩 則勝於此云 李時民來見
잠시 뒤 일어나 소위 송천(松川)공간이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서응(瑞應)인물의 별업으로 얼마 전에 그 어머니인물 장례를 모신 곳이다. 설(薛) 생(生)인물이 점찍어둔 곳을 다 살펴보자 주인이 점심밥을 내었다.
須臾而起 抵所謂松川 卽瑞應別業 才奉其慈葬 薛生看點訖 主人供午飯
해가 이미 기울고서야 장전촌(場田村)공간 앞에 이르렀다. 윤(尹) 서흥(瑞興)인물 형제는 설(薛) 생(生)인물을 데리고 좌일리(佐一里)공간로 들어갔는데 집터를 보기 위해서다. 이곳은 평소에 이름난 터로 알려졌지만 마을 사람들이 막고 금하여서 사람들이 손댈 수 없었다. 설(薛) 생(生)인물서흥(瑞興)인물 모두 긴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 했다.
日已欹午 到場田村前 尹瑞興兄弟携薛生入佐一里 蓋爲見堂基也 此乃素稱名基 而爲村人所防禁 人不得下手 薛生瑞興皆以爲不緊
나는 혼자 출발하여 금당동(金堂洞)공간 앞길에 이르러 물품에서 내려 앉았다. 이복(爾服)인물남미(南美)인물연동(蓮洞)공간으로부터 와서 어운동점(於運洞店)공간 앞길에서 기다렸는데, 와서 모이기로 서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서흥(瑞興)인물 형제도 한참 뒤에 도착했다. 해가 이미 저물어 길을 떠날 수 없었는데, 이때 촌사(村舍)에 기숙할 만한 곳도 없었다. 어운동(於運洞) 점사(店舍)공간가 제일 좋았기 때문에 먼저 짐말물품을 보냈다.
余獨行到金堂洞前路 下馬而坐 爾服南美自蓮洞來 待於於運洞店前路 蓋與相約也 卽爲來會 瑞興兄弟亦良久而至 日已暮矣 末由前進而此時村舍無可寄宿之處 唯於運洞店舍最好 故先送卜馬
나와 설(薛) 생(生)인물, 여러 사람들은 간두(幹頭)공간의 산소로 가서 전배(展拜)했다. 설(薛) 생(生)인물간두(幹頭)공간의 산소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다만 귤정공(橘亭公)인물의 묘자리로 천점(扦點)한 것이 너무 낮아서 두 번째 묘는 자리를 적절하게 잡았지만 높게 점지하지 않은 것이 흠이며, 내청룡(內靑龍)개념에 나무가 무성하여 외조(外朝)를 가리고 내백호(內白虎)개념 또한 그러하니 빨리 나무를 베어 터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 조부님인물의 뜻도 이와 같아서 나무를 기르지 못하게 했지만 맏형수인물가 이 뜻을 알지 못하고 나무를 울창하게 만들어 보기 좋게 만드는 것에만 힘썼으니 한탄스럽다.
余與薛生諸人進幹頭山所展拜 薛生稱美不已 但橘亭墓扦點太下 第二墓得宜而猶欠其不高點 內靑龍樹木茂盛 遮蔽外朝 內白虎亦然 須速剪伐 使之敞豁云 昔年祖父主之意亦如此 使不得養木 而丘嫂不知此意 唯務樹木之葱鬱以爲觀美之計 可歎 旋爲回鞭
곧장 발길을 돌려 어운동(於運洞) 점사(店舍)공간에 묵으러 들어갔다. 집이 꽤나 괜찮았고 벼룩과 땅거미의 침입이 없어서 다행이다.
投入於運店舍 屋宇頗好 無蚤蝪之侵 可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