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40627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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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년 6월 26일 甲戌년 辛未월 癸亥일, 양력 1694-08-17 1694년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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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년 6월 27일 계해
二十七日 癸亥
맑음. 소나기가 간간이 내림.
아침을 먹은 후 죽도(竹島)공간의 장소(庄所)를 가서 보는데, 김 상(相)인물을 이배할 도사(都事)개념 이찬(李纂)인물이 사람을 보내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 나는 이제 돌아 갈 테니 오지 말라고 사양했다. 내가 해창(海倉)공간으로 돌아오자, <Term id="M469" name="의금부도사">도사(都事)인물</Person>가 내가 쉬는 곳으로 와서 만나보았다.
驟雨間作 朝後往觀竹島庄所 金相移配都事李纂送伻將欲來見 余方復路 辭以勿來 余旣回到海倉 都事卽來見于下處
내가 또 가서 김 상인물을 만나다가 잠시 후 해남현감인물이 의막(依幕)에 와있다는 것을 들었다. 나는 김 상인물<Term id="M363" name="승지">승지인물</Person>에게 작별을 고하고, 나가서 해남현감인물을 만난 후 백치(白峙)공간로 와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余又進見金相 俄聞城主來在依幕 余告別於金相承旨 出見城主 轉歸白峙 點心而還
○내가 함평공간에서 귀향한 후 세상일에 전혀 뜻을 두지 않고 오직 밭 갈고 우물 파는 것만을 일삼아 왔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자못 이를 근심으로 여겨 매번 서울공간로 돌아가기를 곁에서 간절히 권했다. 서울공간에 있는 동료들도 편지로 시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을 말하기도 하고, 혹 한단학보(邯鄲學步)[1]라는 말로 나를 조롱한 이도 있었으나, 나는 번번이 웃으며 응하지 않았다. 친상(親喪)을 당하자, 집안사람들의 뜻은 모두 장례가 끝나면 서울공간로 올라가 상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으나, 나는 더욱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국(時事)이 뒤집어지고 나서야, 전에 이러쿵저러쿵했던 자들이 비로소 내 뜻에 감복했다. 하물며 나를 조롱한 자들은 유배형에 처해졌으니, 생각건대 필시 나를 부러워 해 마지않을 것이다. 아! 나는 진실로 어리석으므로 오늘날의 일에 대해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만 감개한 바가 있어서 구차하게 용납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날 요직에 있던 여러 재신(宰臣) 중 남쪽지방으로 귀양 온 이들이 모두 내가 화망(禍網)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하기에, 내가 답하기를 “본래 용렬한 제가 어찌 감히 환란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겠습니까?” 라고 했는데, 이 말을 전해 듣고 내가 말을 야박하게 한다고 여기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죽도(竹島)공간를 점유하려고 계획한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종서(宗緖)인물서울공간에 있었으므로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비로소 나를 따라갔다. 그리고는 올라가서 한번 둘러보기도 전에 마음으로 기뻐하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좋아하니, 이 아이의 소견이 그리 범상하고 누추하지는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시사(時事)를 이야기하며, 출사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내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이 죽도공간가 있어 더욱 세상을 잊을 수 있겠습니다.”라고 한다. 아이의 이 말이 참으로 내 마음을 잘 파악하고 있으니, 탄복하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余自咸賦歸之後 頓無斯世之意 唯以耕鑿爲事 而室人及諸子頗以爲悶 每以西歸之事 從傍激勸 儕流之在京者 亦以書喩以不可居鄕之意 或有嘲我以邯鄲學步之語 而余輒笑而不應 旣遭大故 一家之意皆以爲 襄奉之後上京守喪宜當 而余意尤漠然 及至時事 飜覆前日之議者 始服余意 況嘲我者投竄 想必羨我之不暇矣 噫吾固昏愚 非有先見於今日之事 而第有所慨然者 不欲苟容故也 向日之當路諸宰投竄南方者 皆賀余脫然於禍網 余答曰僕本庸陋 何敢預於患亂之中乎 聞之者或以余言爲不厚云 余之圖占竹島有年 而宗緖以在京之故 尙不得見 今日始隨我而去 登覽未周 有心傾目倒之喜 可想其所見之不甚凡陋 仍及時事 戒余以不可出之意而曰 有此竹島 尤可以忘世云云 兒之此言 實獲我心 不勝歎賞

























주석[ ]

  1. 한단학보(邯鄲學步): 연(燕)나라 수릉(壽陵) 땅의 청년이 조(趙)나라 서울 한단(邯鄲)에 가서 그곳의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채 본래의 자기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린 나머지 엉금엉금 기어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한단 학보(邯鄲學步)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이다. 《莊子·秋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