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40509(윤달)

jiamdiary
이동: 둘러보기, 검색


1694윤59
← 이전 다음 →
1694년 윤5월 8일 甲戌년 乙亥일, 양력 1694-06-30 1694년 윤5월 10일


태그숨기기


원문이미지보기


1694년 윤5월 9일 을해
九日 乙亥
흐리다 맑음
陰陽
노호(露湖)공간 댁 노(奴) 일삼(日三)노비서울공간에서 돌아와 흥아(興兒)인물두아(斗兒)인물 두 아이가 26일에 보낸 문안 편지를 받았다.
露湖宅奴日三自京還 見興斗兩兒卄六出平書
○들으니, 광주(廣州)공간 <Term name="유생">유생(儒生)</Term> 이▲▲(李▲▲)인물의 상소로 인해, 우계(牛溪) 성혼(成渾)인물율곡(栗谷) 이이(李珥)인물복향(復享)개념이 즉시 윤허되었는데, 서울의 다른 편 사람들이 즉시 맞대응하여 상소를 올렸다가, 소두(疏頭)개념 진사개념 한종석(韓宗奭)인물강진공간에 정배(定配)되었다고 한다. 【기사년(己巳, 1689년)에 출향(黜享)을 청하는 상소를 올린 소두(疏頭)개념 이현령(李玄齡)인물영덕(盈德)공간으로 원찬(遠竄)되었다고 한다】
○聞牛栗復享事 因廣州儒生李▲▲上疏 卽爲允可 洛下一邊人 卽爲對擧陳疏 疏頭進士韓宗奭定配康津 【己巳黜享疏頭李玄岭亦遠竄盈德云】
고부(古阜)공간김홍(金泓)인물이 또 들러 방문했다.
○古阜金泓又歷訪
【지난번에 류(柳) 대감인물이 위문편지를 보내 문안하기에 예(禮)에 따라 답장을 쓰고, 다시 간단한 편지를 써서 먼저 위문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유배된 후 즉시 문안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까운 곳에 유배되셨다는 소식을 들은 이래 즉시 심부름꾼을 보내 문안하려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상중(喪中)에 있느라 인사를 차리지 못하여 다만 탄식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차에, 대감인물께서 보내신 위문편지를 받고 지극한 슬픔과 감사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간 유배 중 안부는 어떠하셨습니까?[1] 고생하시는 일상의 여러 모습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장기(瘴氣)가 만연한 무덥고 습한 곳에서 필시 몸에 탈이 나셨을 터이니, 제 걱정이 잠시도 그치지 않습니다. 게다가 독한 해무(海霧)가 끼는 거친 바닷가라 더욱 사람이 거처할 만한 곳이 못되니, 이에 생각이 미칠 때마다 저도 모르게 긴 탄식이 나옵니다. 장요미(長腰米)물품 한 섬(斛)을 보내 곤경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하나[2], 물건이 마음만 못하여 지극한 부끄러움과 죄송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頃日柳台送慰疏問之 依禮裁疏答之 又修小札以謝先問及到配後不能卽問之意

曰自聞泣玦近地 非不欲卽爲伻候 而悲疚之中 未能於人事上 徒自含噦度日 伏承慰問下札 哀感之至 無以爲喩 未審日間 澤畔起居何如 凡百酸苦之狀 不聞可想 而瘴癘蒸濕之地 必致中傷 區區奉慮 不容少已 況惡海毒霧 尤非人所堪處 每一念至 不覺長吁 長腰一斛 聊寓煦沫之意 而物不如情 無任慙悚之至】

























주석[ ]

  1. 택반(澤畔): 못가. 유배지를 이름.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의 “굴원이 쫒겨나 강호에서 노닐며 못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다니는데 안색은 초췌하고 모습이 수척하였다(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라는 구절에서 유래함.
  2. 후말(煦沫): 곤경 중에 서로 도움.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의 고사에서 나온 말. “샘이 말라 물고기가 땅 위에 모여 서로 물기를 불어주거나 물거품을 적셔 준다 해도, 이는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의 존재를 잊고 있음만 못하다(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