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21224
jiamdiary
1692년 12월 24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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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년 12월 23일 | 壬申년 癸丑월 戊戌일, 양력 1693-01-29 | 1692년 1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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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년 12월 24일 정유
二十四日 丁酉[1]
맑음
陽
朝食後離寺 到水源峙下斑荊而坐 仍命琴歌細酌
저녁 무렵에 일어나서, 어둑해져서야[2] 집에 도착했다.
向夕而起 日高舂到家
○前判書尹堦己巳後謫配康津 今二十日以病而逝云
주석[ ]
- ↑ 순서상 이날은 무술일이다. 아마도 23일 일기를 빠트리면서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2월 30일까지 이와 같이 날짜의 간지가 잘못 기록되어 있다.
- ↑ 회남자에는 방아 찧는 것을 그만 둘 시점이라고 되어있다. 戌時라는 설도 있다.
- ↑ 1622(광해군 14)∼1692(숙종 18).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태승(泰升), 호는 하곡(霞谷). 영의정 두수(斗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휘(暉)이고, 아버지는 첨정 면지(勉之)이며, 어머니는 참판 경섬(慶暹)의 딸이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정권을 장악하자, 송시열(宋時烈) 당(黨)으로 몰려 강진에 귀양갔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