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21203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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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년 12월 2일 壬申년 癸丑월 丁丑일, 양력 1693-01-08 1692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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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년 12월 3일 정축
三日 丁丑
흐리다 맑음
陰陽
별진역리(別珍驛里)공간에 있는 족숙(族叔) 세미(世美)인물 보(甫)를 방문했다. 이 숙(叔)은 본래 청계(淸溪)공간분산리(墳山里)공간에 살았는데, 집에 재변(灾變)이 있고 몸에 병이 많아 거기에 안정하지 못하고, 마포(馬浦)공간 호동(虎洞)공간에 집을 지었으나 역시 오래 살지 못하고, 또 별진공간에 집을 지어 왕래하다가, 근자에 두환(痘患)과 변괴(變怪)를 피하여 청계(淸溪)공간에서 이사 왔다. 그 신세가 정말 괴롭다.
訪族叔世美甫於別珍驛里 此叔本居淸溪墳山里 家有灾變 身多疾病 未奠厥居 作舍於馬浦虎洞而 亦不能久住 又作舍於別珍而往來焉 近避痘患及變怪 才自淸溪移來 其身世良可苦也
돌아오는 길에 월암(月岩)공간의 생원 정왈수(鄭曰壽)인물를 방문했다. 이 사람은 해남 동문 밖공간 사람인데, 역시 재변(灾變)으로 가족을 데리고 거처를 이리로 옮겼으나 상사(喪事)와 질병이 여전히 그치지 않으니, 또한 이상스런 일이다. 이 사람은 경신년 후에 (…) 내가 바로 발길을 끊어, 경조사에 찾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歸路歷訪月岩鄭生員曰壽 此則海南東門外人 亦以灾變撤家移居于此而 喪病猶未已 亦可怪也 此人於庚申後□□□□□□ 余輙絶之 弔慶不問久矣
(…) 알지 못하는 일이며, 또 우리 집으로 말하자면 근족(近族)일 뿐만 아니라 져버릴 수 없는 은의(恩義)를 입었는데 내 어찌 차마 윤문(尹門)에 욕이 되는 일을 하겠는가. 소(疏)의 하단에 녹명(錄名)한 것은 저 무리들이 억지로 한 것일뿐 참으로 알지 못한다 하였다. 그리고 여름에 일찍이 한차례 방문했으므로 나 또한 가서 보았다.
□□□□□□□□□ 所不知之事 且言於吾家 不但近族 有不可負之恩義 吾豈忍爲辱及尹門之事乎 疏下錄名 彼輩勒爲之實所不知云云 而夏間曾一委訪 故余亦往見
○전날 윤기업(尹機業)인물에게서 가져온 새매물품 【저래(低來)이다】를 김귀현(金龜玄)의 아들인물에게 전했으나, 병이 많아 메추라기물품 사냥을 할 수 없어서 오늘 다시 기업(機業)인물에게 돌려보냈다.
○前日尹機業處持來之鷂 【卽低來也】 傳諸金龜玄之子 而多病不能獵鶉 今日還給機業以送
○<Term name="학정">학정(學正)</Term> 이유(李瀏)인물의 형 이한(李瀚)인물과 아우 이양(李瀁)인물은 모두 동당초시(東堂初試)개념에 합격하였다. 두 사람은 모두 강경에 통달하고 또 제술에도 능하여 이미 초시를 하고 급제도 곧 할 수 있을 것이라, 이가(李家)의 복록을 칭찬하며 장대히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형제는 가을부터 대둔사공간로 공부하러 들어가 경서를 연마하기를 밤낮을 잊고 열심히 하였다. 한(瀚)인물이 어느 날 밤 휴식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가 때가 지나도 일어나지 않자 그 아우가 흔들어 깨웠으나 응하지 않아 깜짝 놀라 보니 이미 죽어있었다. 지난달 그믐 미분(未分)의 일이라고 한다. 대개 사람의 복록은 유한(有限)한 것이니, 한(瀚)인물이 만일 죽지 않았다면 삼형제가 모두 문관(文官)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실로 한미한 가문에선 드문 일이니 이러한데도 재화(灾禍)가 없겠는가? 비로소 화(禍)와 복(福)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알겠으니,덕(德)은 복(福)을 부르는 바탕이라 덕을 쌓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복에) 이르면 이는 길(吉)한 것이 아니요 또한 애쓴다고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李學正瀏之兄瀚及弟瀁 俱得東堂初試 兩人皆治經已熟 且能於製述 旣得初試 及第可指日而爲之 人莫不稱道李家之福而壯之 其兄弟自秋負芨大芚寺 方治經 罔晝夜孜孜 瀚於一日夜 爲休息寢睡 過時不起 其弟搖而覺之 而不應 乃驚怪 視之已死矣 卽前月晦日夜未分云 盖人之福祿有限 瀚若不死 則三兄弟皆可爲文官 此實微門所罕有也 如此而其無災禍乎 始知禍福相爲倚伏 而德是福之基 無積德而猝致非吉 亦不可力致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