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40406
1694년 4월 6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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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년 4월 5일 | 甲戌년 己巳월 癸酉일, 양력 1694-04-29 | 1694년 4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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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적암(深寂菴) 중수기(重修記)
내가 전에 덕천(德川)의 떡 가게를 지나는데, 등불 아래 노파 서너 명이 둘러 앉아 떡을 빚고 있었다. 한 노파가 말하기를 “떡은 작게 빚고 이익은 많이 보고 싶지만, 오직 죽어 명부에 들어가서 철가(鐵枷)[3]의 고초를 당할까 두려워서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다른 노파들도 웃으면서, “그렇다”고 했다. 저들은 거리의 가게에서 떡을 파는 아녀자로서, 새벽에 일어나서 끊임없이 열심히 작은 이익을 다투다가 습관이 천성이 되었다. 설사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의 능란한 화술과 공수(龔遂)와 황패(黃覇)의 교화하는 능력으로 그들에게 인의예지를 누누이 말하더라도, 저들은 반드시 귀머거리처럼 귀를 막고 맹인처럼 눈을 감을 것이다. 그러하니, 인간 세상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을 하늘을 벗어나고 땅으로 들어가도록 놀라운 말로 꾸며 유혹하고 선동하여, 어리석은 지아비와 지어미로 하여금 두려워 반성하고 이기심을 참고 욕심을 절제하게 하며, 형벌을 주지 않아도 위엄이 서고 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금하는 것은, 불교의 공이 또한 조금 도운 바가 있다.
만허(萬虛) 스님은 깊이 들어가고 높이 올라가서 지리산공간의 심적암(深寂菴)공간에 거주한다. 암자가 오래되어 무너지고 기울어져서 마치 도가 높은 사람이 절뚝거리고 몸이 기운 것과 같다. 하루라도 거기를 찾아가면 두려워서 오래 머물 수 없을 정도여서, 그 암자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도리어 즉시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대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대궐 같은 집과 부드러운 방석 위에 앉으면 편안하기는 편안할 것이다. 네 마리 말이 끄는 큰 수레에 타면 높기는 높을 것이다. 그러나 염여퇴(灔澦堆)[4]와 태항산(太行山)[5]의 길로도 그 위험한 것을 비유하기에는 부족하다. 선생은 이 집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가?”
암자의 승도가 대사에게 집을 고치기를 청했다. 그러자 대사가 시주를 널리 모집하여 여러 해 경영하여 옛날 모습대로 고쳐지었다. 건물의 빼어남과 아름다움은 전에 비하여 더욱 빛난다. 공사가 끝나자 내게 기를 써달라고 청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천지간의 여관을 자기 소유라고 여기며 말하기를 내 방, 내 집이라고 하는데, 결국 이것은 아롱(鵝籠)[6]과 선각(蟬殼, 매미 허물)일 뿐이다. 저 사미(沙彌)들은 또 가정의 즐거움과 자손의 사랑도 없이 구름 낀 숲과 안개 낀 골짜기에서 병 하나와 발우 하나로써 온 곳도 정한 곳이 없고 갈 곳도 매인 곳이 없는데, 오히려 마음을 펼치고 서원을 맹서하며 재물을 내고 힘을 다하여 기운 사람은 바로 세워주고 위험한 사람은 편안하게 한다. 이것은 반드시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즐기는 바가 그 사이에 있어, 뒤섞여도 흐려지지 않고 말려도 막을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이 남의 집에 살고 남의 밥을 먹으면서 그 방이 낡고 그릇이 기울어져도 오히려 시시덕거리며 걱정하지 않는데, 대사를 보면 마음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그리하여 거듭 느끼는 바가 있다.
深寂菴重修記
余昔過德川之賣餠店 燈下有老婆三四 圍坐裁餠 一婆云 餠欲其裁之小而取贏多也 惟懼死入冥府 受鐵枷苦楚 不敢爲是 諸婆嘻嘻曰諾 彼以街肆販婦 鷄鳴而起 營營孶孶 錐刀是競 習與成性 雖蘇張之善辯龔黃之化俗 驟語之以仁義禮智 彼必襃然以聾 矇然以睡 於是乎 糚出人世之所不聞所不睹 出天入地可驚可愕之言 誘惑煽動 使愚夫愚婦 怵惕反省 忍己節慾 不刑而威 不令而禁者 釋氏之功 抑亦有少補也
萬虛上人 賾陟住居于頭輪之深寂菴 菴年久傾頹偃蹇 若高人之跛倚 一日訪焉 凜乎其不可久留 足纔及軒而反旋踵焉 師啞然笑曰 人之處世 廣廈細氈 安則安矣 軒車駟馬 尊則尊矣 而灔澦之堆 太行之路 不足以喩其險也 子以是爲危乎
菴徒乞師改宇 師廣募檀緣 經營數年 因舊制而修創之 棟宇之傑 輪奐之美 眎前增輝 功旣訖請余爲記
余以爲天地蘧廬 莫不竊竊然 自私 曰我室我家 究竟是鵝籠蟬殼 彼沙彌者 又不有室家之樂 子孫之戀 而雲林烟壑 一甁一盂 來無定所 去不牽顧 猶能發心誓願 捐財殫力 使敧者正之 危者安之 是必不有挾於己 而所悅者存乎其間 淆之不濁 挽之不沮矣 世之人 居人之宅 食人之食 而視其室弊器敧 猶且怡怡然 不以爲憂 觀於師 得不愧心 余於是重有感焉
주석
- ↑ 머리를 동쪽을 향하게 하고 발은 서쪽을 향하게 묻는 것을 말함.
- ↑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
- ↑ 쇠로 만든 목에 씌우는 형구(刑具)
- ↑ 배를 타고 무사히 건너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험하다는 장강(長江) 구당협(瞿塘峽)의 여울물 이름
- ↑ 중국 하남성과 산서성 경계에 있는 태항산은 길이 험준하기로 유명하다. 백거이(白居易)의 시 〈태항로(太行路)〉에 “태항산 험한 길 수레를 부수지만, 인심에 비긴다면 평평한 길이로고.(太行之路能摧車 若比人心是坦途)”라고 했다.
- ↑ 아롱(鵝籠): 아롱서생(鵝籠書生). 변화무상한 환상적인 이야기로, 남조 양(南朝梁) 오균(吳均)의 《속제해기(續齊諧記)》에 실려 있다. “양선(陽羡)과 허언(許彥)이 거위 장〔鵝籠〕을 지고 가다가 한 서생을 만났다. 서생이 다리가 아프다며 거위 장 속에 타고가기를 요구해서 태웠다. 한 나무 아래 이르러 서생이 나오더니 입에서 그릇과 음식을 토하여 허언과 함께 마셨다. 또 한 여자를 토하여 함께 앉아 놀았다. 서생이 취하여 눕자 여자가 한 남자를 토했다. 여자가 눕자 남자가 한 여자를 토하여 함께 마셨다. 서생이 깨려하자 여자가 또 비단 휘장을 토하여 서생을 덮고는 그 안에 들어가 함께 잤다. 남자가 따로 한 여자를 토하여 술을 마시며 놀았다. 그 후 각기 토한 것을 차례로 삼키고, 서생이 구리 쟁반 하나를 허언에게 주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