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90719"의 두 판 사이의 차이
jiamdiary
(import) |
(import) |
||
11번째 줄: | 11번째 줄: | ||
|양력=1699-08-14 | |양력=1699-08-14 | ||
}} | }} | ||
− | {{DivboxDiary}} | + | {{DivboxDiary|{{ButtonToggleTag}}|{{ButtonLoadPdf|pdfmark=jiamdiary169907.pdf#page=5}}}} |
{{LayoutDiary | {{LayoutDiary | ||
30번째 줄: | 30번째 줄: | ||
}} | }} | ||
− | [[분류: | + | [[분류:귀가]][[분류:조우]][[분류:경사]][[분류:소식]][[분류:방문]] |
2020년 2월 3일 (월) 10:41 판
1699년 7월 19일 | ||
← 이전 | 다음 → | |
1699년 7월 18일 | 己卯년 壬申월 丙戌일, 양력 1699-08-14 | 1699년 7월 20일 |
태그숨기기
원문이미지보기
1699년 7월 19일 병술
十九日 丙戌
맑음
陽
비곡(比谷)공간의 김(金) <Term id="M419" name="영부사">영부사(領府使)인물</Person>가 전염병에 별실(別室)인물을 잃고 또 윤기업(尹機業)인물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기에, 오늘 가서 위문하였다.
比谷金領府使 喪其別室於時疾 又移尹機業家 今日往唁
○들으니, 노릉(魯陵)인물을 복위시키고 봉분을 고쳐 쌓은 후 곧 무너져, 감사(監事)개념 최석정(崔錫鼎)인물 상(相)과 이동암(李東馣)인물 등 여러 사람이 파직되었다고 한다. 능침의 변고가 지극히 이상스럽다. 전에 영릉(寧陵)공간이 무너졌을 때 감사(監事)개념 신명규(申命圭)인물, 이정기(李鼎基)인물 등을 일죄(一罪, 사형)로 논하여 제주공간에 유배 보냈는데, 지금은 단지 파직에 그쳤다. 무슨 경중(輕重)의 차가 있어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聞魯陵復辟改封築後 旋爲崩頹 監事崔相錫鼎及李東馣等諸人坐罷 陵寢之變 極可異也 而昔年寧陵崩拆 監事之臣申命圭李鼎基等 論以一罪竄逐濟州 今則只罷而已 未知有何輕重之殊而然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