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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5월 1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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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5월 10일 | 戊寅년 戊午월 甲申일, 양력 1698-06-18 | 1698년 5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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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5월 11일 갑신
十一日 甲申
흐리다 맑음
陰陽
○좌도(左道) 암행어사개념 이민영(李敏英)인물이 지난 번에 진도(珍島)공간에 들어갔다가 수영(水營)공간과 해남(海南)공간을 거쳐 방향을 바꾸어 강진(康津)공간으로 갔는데, 이르는 곳마다 음악 판을 벌이고 잔치를 열었으며 수영공간에서는 뱃놀이까지 질펀하게 했고 검찰(檢察)하는 일은 없었다. 각 군현에서 다투어 뇌물을 바쳤는데, 해남공간의 쌀물품 섬과 명주[綿紬]물품 1동, 강진공간의 명주물품 1동과 비단[綵段]물품 그리고 쌀물품 50섬을 배에 실었다는 말이 길거리에 파다했다. 사람들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지만 청렴하고 깨끗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에 김시걸(金時傑)인물이 암행어사로 왔을 때는, 이르는 군현마다 반드시 4~5일 혹은 5~7일을 머물며 의복을 만들었고 짐을 실은 말이 길을 채웠다. 전 암행어사인물나 후 암행어사인물 모두 하는 짓은 한 가지이나, 들리는 말에 따르면 후 암행어사인물가 더욱 심하다고 한다. 슬프다! 임금께서 암행어사개념를 파견하신 것은 백성의 괴로움과 수령의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알고 두려워하고 조심하게 하려는 뜻이다. 근래 이 무리는 재물을 거두어들일 절호의 기회로 생각한다. 이 또한 흉년 때문인가. 더욱 한탄스럽다.
○左道暗行李敏英頃入珍島 從水營海南 轉于康津而去 而到處張樂設宴 水營則爛漫船遊 無所檢察 列邑競以賂物啗之 海南之米石及綿紬一同 康津之綿紬一同 綵段及米五十石船卜之說 道路喧傳 人言雖難盡信 其不爲廉潔 則可知 頃年金時傑爲暗行 所到之邑 必留連四五日 或六七日 造成衣服 卜駄盈路 前聖後聖 其揆一也 而以所聞 則後尤甚焉 噫 聖主之發遣暗行 欲知民間疾苦守令賢否 使有畏戢之意也 而近來此輩 適足爲聚斂之奇會 此亦凶年之致歟 良可嘆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