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1020"의 두 판 사이의 차이
jiamdiary
(import) |
(import)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하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1번째 줄: | 11번째 줄: | ||
|양력=1697-12-03 | |양력=1697-12-03 | ||
}} | }} | ||
− | {{DivboxDiary}} | + | {{DivboxDiary|{{ButtonToggleTag}}|{{ButtonLoadPdf|pdfmark=jiamdiary169710.pdf#page=7}}}} |
{{LayoutDiary | {{LayoutDiary | ||
39번째 줄: | 39번째 줄: | ||
}} | }} | ||
− | [[분류:내방]][[분류:노비]][[분류: | + | [[분류:내방]][[분류:노비]][[분류:인물]][[분류:생사]][[분류:가족]][[분류:귀환]][[분류:질병]] |
2020년 2월 3일 (월) 23:03 기준 최신판
1697년 10월 20일 | ||
← 이전 | 다음 → | |
1697년 10월 19일 | 丁丑년 辛亥월 丁卯일, 양력 1697-12-03 | 1697년 10월 21일 |
태그숨기기
원문이미지보기
1697년 10월 20일 정묘
二十日 丁卯
맑음
陽
남원(南原)공간의 전 정자(正字)개념 정동리(鄭東里)인물가 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함양(咸陽)공간에서 남원(南原)공간으로 이사하여 산 지 몇 년이 되었는데, 작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교서관(校書館)개념에 배치되었으나 벼슬하지 않고 향리에 거처했습니다. 흥양(興陽)공간의 김 <Term id="M129" name="대간">대간(大諫)인물</Person>, 광양(光陽)공간의 이 <Term id="M649" name="판서">판서(判書)인물</Person>, 월남(月南)공간과 별진(別珍)공간의 유배지를 두루 들러 오는 길입니다.”
南原鄭正字東里來 自言自咸陽移居南原 才數年 昨年決科 肆校書館 不仕居鄕 歷抵興陽金大諫光陽李判書及月南別珍而來云
○18일에 두서(斗緖)인물가 고금도(古今島)공간에서 돌아왔다. 다친 발이 처음에는 매우 대단하여 뼈가 어긋나기까지 하였음을 비로소 알았다. 지금은 태반이 나았는데도 여전히 걷지 못하니 매우 걱정이다.
○十八斗緖自古今島還 始知傷足初甚大段 至於違骨 今則太半差愈 而猶未能運步 悶悶
○노(奴) 덕립(德立)노비이 새벽닭이 울 때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이 노의 나이는 올해 여든인데, 부부가 지금껏 해로하였고 자손이 60여 명이나 되니, 실로 세상에 드문 복이다.
○奴德立鷄曉奄忽而逝 此奴年今八十 夫妻俱存 子孫六十餘人 實是稀有之福也
윤익성(尹翊聖)인물이 왔다.
尹翊聖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