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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12월 15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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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12월 14일 | 丙子년 辛丑월 丁酉일, 양력 1697-01-07 | 1696년 12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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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12월 15일 정유
十五日 丁酉
맑음
陽
○노(奴) 삼봉(三奉)노비이 서울공간에서 돌아와 창서(昌緖)인물와 두서(斗緖)인물가 6일에 보낸 편지를 받았다. 의금부의 일은, 상인물의 환후가 아직도 회복되지 않아 결말을 짓지 못했다고 한다. 애통함과 절박함을 어찌 형언하랴? 상인물의 환후가 중해졌다가 덜해졌다가 하여, 세 제조(提調)개념[1]가 숙직하고 있으며, 조정 문안은 파했다가 다시 한다고 한다. 신민(臣民)의 걱정을 어찌 말로 할 수 있겠는가?
○奴三奉自京還 得昌斗初六出書 金吾事 以上候尙未平復 不得結末 痛迫何言 上候進退輕重 三提調直宿 朝廷問安旣罷而復爲云 臣民之憂 可勝言哉
주석[ ]
- ↑ 세 제조(提調) : 내의원의 제조, 부제조, 도제조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