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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8월 7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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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8월 6일 | 丙子년 丁酉월 庚寅일, 양력 1696-09-02 | 1696년 8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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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8월 7일 경인
七日 庚寅
맑음
陽
김성삼(金聖三)인물이 왔다.
金聖三來
○오랫동안 서울 소식을 듣지 못하여 답답함을 이길 수 없어 권 대감인물에게 사람을 보내 물었더니, 조보(朝報)물품에 기록된 말을 써서 보내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방찬(方贊)인물 등 5인은 승복하여 사형에 처해졌다.[1] 주모자 이홍발(李弘渤)인물은 중형을 받았으나 불복하고 죽었다.[2] 대간개념이 계(啓)를 올려, 흉패를 묻은 이후 윤 <Term id="M569" name="진사">진사(進士)인물</Person>가 모의에 함께 하여 상소를 올리게 하였으니 강오장(姜五章)인물을 국문(鞫問)하여 처단할 것을 청하였는데, 곧바로 윤허하였다.’ ‘윤’은 종서(宗緖)인물를 가리킨다. 일을 장차 예측할 수 없으니, 이를 어찌 해야 할런지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홍발의 처인물는 참판개념 박경후(朴慶後)인물의 딸인데 이홍발이 장을 맞아 죽은 날에 자결했다고 한다.
○久不聞京報 不勝鬱鬱 專伻問權台 則以朝報所出之語 書示曰 方贊等五人 承服正刑 謀主李弘渤重刑 不服而斃 臺啓以爲埋凶之後 尹進士和應同謀 勸令陳疏 請姜五章鞫問處斷 卽允 尹卽指宗緖也 事將不測 此將奈何 不知所言 弘渤之妻 卽參判朴慶後女也 及渤杖斃之日 自決而死云
○정동기(鄭東箕)인물가 왔다.
○鄭東箕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