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90720(윤달)
1699년 윤7월 2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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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윤7월 19일 | 己卯년 壬申월 丙辰일, 양력 1699-09-13 | 1699년 윤7월 21일 |
깎아지른 기이한 바위 손바닥 모양으로 벌어진 곳에
절벽에 매달린 단청한 집 있으니 그 기세 우뚝하도다
인간 세상에 이처럼 진정한 신선 세계 있어
반나절 올라 완상하니 온갖 생각 사그라지네
최시필이 즉시 다음과 같이 차운(次韻)했다.
손바닥 합쳐 바위 되었다가 홀연히 다시 열린 곳
허공에 걸린 푸른 바위벽 울창하고 우뚝하네
중들이 말하길, 우객(羽客)이 종종 내려오면
간밤에 연단한 재가 남아 있었다네
안형상인물은 다음과 같이 차운했다.
하늘이 다듬은 깎아지른 만길 바위 벌어진 곳에
붉은 용마루 푸른 나무 나란히 우뚝하네
오늘 이곳에 오르니 맑은 유람하기 좋아
돌아가는 것 잊고 속세의 근심 다 사그라지네
그리고는 이 시들을 나란히 암자의 앞 기둥 벽에 썼다. 최(崔) 노(老)인물는 시를 잘 지으니 오면 반드시 웅얼웅얼 지껄일 것이기에, 내가 위의 시를 미리 지어 ‘먼저 시작하여 제압하는 계책’으로 삼았다. 그런데 최 노인물는 여기에 차운한 데다 4운(韻)의 시까지 지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를 골탕 먹이려고 한 것이다. 그가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하늘이 손바닥 모양으로 벌렸다가 합쳐 만든 산
바위 속에 몇 칸 집 겨우 이루었네
예전에 한 약속 있으니 어찌 어기랴만
신선이 아니면 오를 수도 없었으리라
안기생(安期生)[1]의 집은 마고동(麻姑洞)에 있고
지로(支老)의 이름난 집 봉래산의 반열이네【내가 지암(支庵)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황학(黃鶴)과 백운(白雲)을 읊은 천고의 흥에 겨워【자신을 '황학루(黃鶴樓)' 시를 지은 최호(崔顥)에 비유했다. 그 성을 기억한 것이다】
애써 머무느라 해가 기울도록 돌아가기를 잊었네
削立奇巖掌樣開
懸崖畫閣勢崔嵬
人寰有此眞仙界
半日登臨萬念灰
崔卽次韻曰
合掌爲巖忽復開
半空蒼壁鬱崔嵬
僧言羽客時時到
前夜燒丹有死灰
安次曰
天琢巉巖萬仞開>
朱甍碧樹並崔嵬>
登臨此日淸遊足>
令我忘歸世慮灰
並書於庵之前楹壁上 崔老能詩 到來則必有唵哢之事 故余預構此 以爲先發制人之計 而崔旣次韻 又作四韻示我 蓋欲困我也 其詩曰
天開掌樣合爲山
巖裡纔成屋數間
曾有前期寧可負
也非仙分不能攀
安期家在麻姑洞
支老【以吾支庵故云】名編蓬島班
黃鶴白雲【自況於崔顥記其姓也】千古興
强留斜日却忘還
주석[ ]
- ↑ 동해의 선산(仙山)에서 살았다는 고대의 전설적인 선인(仙人)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