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0221

jiam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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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2월 20일 丁丑년 癸卯월 壬寅일, 양력 1697-03-13 1697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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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7년 2월 21일 임인
二十一日 壬寅
흐리다 맑음
陰陽
해가 뜬 뒤 길을 떠나 십리를 가서 원문(轅門)공간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日出後發行 行十里到所謂轅門
양옆에 바다를 끼고 있고 산세는 마치 항아리목 같았는데, 그곳에 문루를 지어놓고 그 편액을 진해루(鎭海樓)공간라고 썼다. 문의 양옆에서 바다까지 성을 쌓아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통영공간에서 문장(門將)을 정해서 보내 그곳을 지키도록 하고 5일마다 교체를 하였다. 반드시 행장(行狀)개념을 본 뒤에야 들어가는 걸 허락해 준다. 내가 이 문공간에 도착하니 군졸이 문을 급작스레 닫고 막았는데 행장개념을 꺼내 보여주니 그제야 문을 열고 들어가게 해줬다. 문을 들어가자마자 길이 두 갈래였는데, 오른쪽은 통영공간통제사(統使)개념정홍좌(鄭弘佐)인물이다】으로 가는 길로 5리 정도 되었고, 왼쪽은 거제공간로 가는 길이었다.
左右挾海 山勢若壺項 作門樓 書其額曰鎭海樓 從門之左右築城抵海以防人之出入 自統營定送門將而守之 五日受遞 必見行狀 然後乃許入 吾行到此門 卒輒閉門而拒之 出示行狀 始開門許入 才入門有路兩岐 右則向統營路五里許【統使 鄭弘佐】 左則向巨濟路
10리쯤 가서 견내나루(見乃渡)공간에 도착했다.
行十里餘 到見乃渡
견내나루공간 근처에 원(院) 건물이 있었으나 수장(守將)은 없고 단지 사공의 집 한 채가 있었다. 나루의 크기는 대략 동작진(銅雀津)공간보다 넓었다. 사공(津夫)이 또 막았으니 추노(推奴)개념를 염려하거나 관청과 관련이 있어서 막은 것이리라. 사공이 내가 유배지로 향한다는 것을 듣고 나서는 바로 건너게 해주었다. 거제 쪽 나루에도 원(院) 건물이 있고 지키는 사람도 있어서 행인을 통제했다. 나루에서 관문공간까지는 30리다.
渡頭有院宇 而無水守將 只有津夫家一戶 津之大稍廣於銅雀津 津夫亦拒之 蓋慮推奴或干涉官家而防之也 及聞余向謫所 卽濟之 巨濟邊津頭亦有院宇 且有守者 操縱行人 自津頭抵官門三十里
왼쪽으로 가서 성치(城峙)공간둔덕리(屯德里)공간에서 10리 거리의 고개를 넘으려 하였는데, 길이 험해 갈 수 없었으므로 오른쪽 길을 통해 영등(永登) 만호진(萬戶鎭)공간을 경유하여 화피치(禾皮峙)공간를 넘었는데 더할 나위 없이 험준했다.
左行踰城峙 則距屯德十里云 而路險不可行 由右路過永登萬戶鎭 踰禾皮峙極峻
둔덕리공간에 있는 종아(宗兒)인물의 유배지에 도착했다. 서로 만났을 때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다. 머무는 곳은 비장(裨將)개념 김여성(金礪聲)인물의 집으로서 종아인물가 혼자 차지하여 주인개념은 다른 집으로 옮겨 살고 있었다.
到屯德里宗兒謫所 相見之際 心事難狀 所寓處卽金裨將礪聲之家 兒子專居之 主人則移于他舍矣
어떤 총각 대여섯 명이 나를 맞이하고서는 절을 올렸다. 주인네 아들과 마을 아이들 중에 종아인물에게 배우는 아이들이었다. 주인개념 김여성인물과 처음에 묵었던 주인개념 김봉학(金奉鶴)인물, 그의 아들 김여점(金礪點)인물, 같은 마을에 사는 별감(別監)개념 윤필선(尹弼先)인물이 보러 왔다. 주인개념이 저녁밥을 차려주었다.
有丱者五六迎拜 卽主人之子及村兒 受學於宗兒者也 主人及初寓主人金奉鶴 其子礪點 同里居 尹別監弼先來見 主人供夕飯
낙안공간에서부터 동쪽으로는 길이 험하고 고개가 많았으며 소나무물품가 매우 무성했다. 섬진강공간을 건너고 나니 백성들의 풍속은 자못 순박했으나, 산천의 험준함과 소나무물품의 무성함은 갈수록 심해졌다. 험준한 고개와 위험한 비탈길을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니 여행이 쉽지 않았다. 소나무물품가 산을 둘러싸 빽빽이 우거져 있어서 헤쳐 나아가기 어려웠는데, 고성공간거제공간 등의 고장은 더욱 무성했다. 배를 만들 재목이므로 벌목을 금하고 오랫동안 잘 길러왔기 때문이다. 변방을 방비하는 대책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훌륭한 장수를 얻지 못한다면, 산에 가득한 소나무물품가 무용한 재목이 되어 적의 물자가 됨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조정의 관리들이 힘쓰지 않아서 되겠는가?【둔덕리공간 동쪽부터 관문(官門)공간까지는 20리다】
○自樂安以東 路險多峙 松木甚盛 旣渡蟾江 民俗頗淳 而山川之險阻 松木之茂盛 去去轉加 峻峙危坂 乍降旋登 行李不易 松木籠山 鬱密難開 至固城巨濟等處尤盛 蓋爲船材別爲禁伐長養也 備邊之策 可謂至矣 而若不得良將 則滿山松木未免爲無用之材 適足爲資敵之物矣 居廟堂者 可不勖哉【自屯德東距官門二十里】